트럼프, 미국 공장 유인책 노골적으로 언급…일자리 파괴·소비자 피해 등 반발 거세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며 세계 무역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이프가드 조치가 자국으로 공장을 들여오기 위한 유인책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방송,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은 23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세이프가드를 통해 ‘미국제일주의’ 무역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칠 준비가 됐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하려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명령에 공식 서명하면서 “이는 미국 근로자와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세탁기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최근 약속을 완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세탁기공장들이 절대 미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역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미국에 재앙으로 판명된 딜(Deal)에 대해 한국과 재협상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결정으로 미국이 중국과 다른 주요 무역상대국들과의 긴장을 더욱 격화할 리스크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세이프가드는 전 세계적으로 무역과 관련한 중요한 이벤트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나왔다.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이날 개막했다. 글로벌 리더들이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도 이날 재개됐다.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 한국과 세계 최대 태양광 패널 공급국인 중국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은 세이프가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트럼프 정부가 무역 제한 조치를 남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이 이런 조치를 자제할 것을 희망한다. 합법적인 우리의 이익을 지키고자 다른 WTO 회원국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WTO는 세이프가드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 사실상 큰 효과는 없다는 평가다.
삼성은 “세이프가드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큰 손실”이라며 “선택의 폭이 좁아져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LG도 “이번 사례는 특정 업체가 시장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얻고자 무역법을 사용한 교과서적인 사례”라며 “이번 조치의 결과로 새 공장 건설이 차질을 빚어 오히려 미국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태양광에너지산업협회(SEIA)는 “미국 자체적으로 패널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설치 분야를 중심으로 2만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에서 태양광 발전은 37만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전날 트위터에 “태양광 패널에 3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국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전기요금을 올리며 환경을 해칠 것”이라며 “의회는 정부의 해로운 결정을 뒤집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다음 타깃이 철강과 알루미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미 두 품목에 대해 수입품이 안보를 위협하는지 조사한 보고서를 트럼프에게 제출했다. 트럼프는 90일 이내 상무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무역 제한 조치를 취할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