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높은 의존을 해온 국내 원유 수입 경로가 바뀌고 있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위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에 따라 중동산 원유 비중이 줄고 미국, 카자흐스탄 등 아메리카, 아시아산 원유의 수입이 증가했다. 아직 중동산 원유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대이지만, 최근 80%대가 붕괴되며 원유 도입선이 다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9일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올해 1~10월 누적 중동산 원유의 수입 비중이 83.2%를 기록하는 가운데, 지난 10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4.8%를 기록하며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원유수입 상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중도 의미있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비중은 2015년 29.8%, 2016년 30.1%였으나 올해 28.7%로 감소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전체 원유수입의 21.3%로 비중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동안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물량확보의 용이함과 지리적 근접성 등의 이유로 중동산 원유를 많이 수입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수출기구(OPEC)의 감산 돌입 이후 두바이유 가격은 상승한데 반해, WTI(서부텍사스유)는 미국의 셰일원유 개발로 원유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하락한 것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중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수출을 축소한 것 역시 전체 중동산 원유수입 비중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중동산 원유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산 원유 수입은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산 원유의 수입물량은 1~10월 기준 8.2%의 비중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특히 카자흐스탄으로부터의 원유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카자흐스탄의 원유 생산량 증대와 러시아보다 낮은 도입 단가 등의 영향으로 수입물량이 지난해 200만 배럴에서 올해 1900만 배럴로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미국산 원유 수입이 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수출금지 조치 해제 이후 국내에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미국산 원유 200만 배럴이 수입됐지만 올해 물량은 전년 대비 3배 이상인 700만 배럴을 넘었다. OPEC감산 합의와 셰일 원유의 생산 증가로 중동산 원유 가격에 비해 가격이 하락하면서 미국산 원유 도입의 경제성이 향상되면서 미국산 원유 수입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정부와 정유업계가 원유도입선 다변화 정책과 함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시킨 결과다. 이를 통해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 정세에 따른 원유공급의 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하며 에너지 안보 차원의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중동 산유국들이 아시아 지역에 판매하는 원유 가격을 다른 지역보다 높게 책정하는 ‘아시아 프리미엄’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도 중동산 원유 비중이 높은 만큼 수입처 다변화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세계 최대 원유 순수입국인 중국는 러시아와 앙골라 원유의 수입 비중을 늘려가며, 중동산 원유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며 “이에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처음으로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우리나라처럼 원유 수입의 약 80%를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아프리카와 남미산 원유 수입 비중을 늘리는 등 수입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