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극동건설, 스타리스 두 회사와 외환은행 주식 일부를 팔아 1조5000억원의 차익을 낸 것과 관련해 '국부 유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둘이다. 론스타가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불법 인수 의혹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외환은행의 지분을 판결 전에 팔아넘기는 게 적법하냐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부품 회사인 (주)만도의 경우도 국제 투기자본인 ‘케이케이아르’(KKR)라는 미국계 사모펀드가 인수의사를 밝히면서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마디로 자본개방의 시대흐름을 맞아 론스타사태와 같은 외국자본과 우리 토종자본간의 경영권사수를 위한 힘겨루기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되어 나갈 것이고, 이는 피할 수없는 국가적 현실이자 최대의 과제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선 론스타는 2003년 극동건설을 1700여억 원에 사들였다가 이번에 6600억 원을 받고 팔았다. 지난 4년 동안 유상 감자와 배당을 통해 회수한 2200억 원을 합쳐 7100억 원의 차익을 올렸다. 론스타는 5년 전 1500억 원에 산 스타리스도 3000억 원에 팔았다. 2003년 인수한 외환은행은 이번에 처분한 13.6% 지분에서만 6500억 원의 차익을 냈다. 남은 지분 51%를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받고 다 팔면 이익은 모두 4조~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월 14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3면 톱기사는 그래서 최근의 이런 추세와 관련, '도전받는 한국의 공적(公敵)관계'라는 보도를 내놨다. 한국기업의 자본환경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 보도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 대해 한국 검찰이 출국 금지조치를 취했음을 전하면서 이같은 조치가 한국에서의 사업 위험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를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침입으로 까지 표현한다'는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시각이 완전히 다 옳다고야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기업 및 경제구조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이 매우 심상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관점에서든 이미 세계는 자본도 국경이 없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의 구조적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의 약 51%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의 경영권이 론스타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환은행이 론스타의 완전한 자산은 될 수가 없다. 1주가 1의결권이라고 본다면, 절반이 넘는 주식의 독점은 사실상의 경영권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해서 회사가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하거나 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결국 이 사건에서 본다면 크게 두 대상의 힘겨루기가 진행되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는 외국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토종자본이다. WTO협정 체결 이후, 금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부분의 시장을 개방하여 무역은 물론이고 산업 전반에 걸친 치열한 무한경쟁은 이제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체감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자본간의 힘겨루기에서 과연 누가 유리한가를 근본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만큼의 경제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전 세계의 통화량은 우리를 훨씬 상회한다. 이러한 외국의 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때, 처음 노리는 대상이 대개는 그 국가의 우량기업들이다. 이렇게되면 외국자본과 회사를 외국인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는 국내 자본들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 기본이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국경없는 자본시대-. 분명한 것은 공장을 세우고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경제의 성장규모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각국이 서로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 가며 외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점은 지분투자만을 위해 들어오는 금융투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론스타'와 같이 해외 금융투자자들이 엄청난 이익을 남기면서 한국 기업을 팔아 넘기고 'Bye Korea!'를 하고 있는 현상_. 이른바 '먹튀' 논란이 확산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세금을 제대로 납부했느냐가 안했느냐, 국내법규를 지켰느냐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단지 몇몇 기업의 일이지만 앞으로는 '국제 자본 자유경쟁'의 확산과 함께 모든 기업이 이러한 일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다. 법과 제도의 정비, 외국자본의 흐름파악에 주시할 것, 경영권 방어의 방법연구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적지않은 사회적 진통도 겪게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최근 이슈가 된,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부품 회사인 (주)만도의 경우도 주요 사례가 된다. (주)만도도 또다시 투기자본에 팔려나갈 위기다. 막대한 국부가 유출될 위험이 있는데다 회사에 피땀을 쏟아부은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고용불안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지고 있다. 매년 고도성장을 거듭해 8500여명이 종사했던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기계는 1997년 말 한라그룹 부도로 흑자부도 사태를 맞았었다. 결국 1만7천명에 이르는 공권력까지 투입한 정리해고와 강제 희망퇴직 등 노동자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이 외국 투기자본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미 주력이었던 제동(평택공장), 조향(원주공장), 완충장치(익산공장) 기술이 (주)만도라는 이름으로 제이피모건과 어피니티캐피털 등이 참여한 투기자본에 넘어갔다. 그러나 이들 투기자본은 당시 공장 셋인 (주)만도를 6천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지만, 투입된 외자는 1890억원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국내은행에서 조달했다. 실질적인 외자유치는 허울이었던 셈이다. 이들 투기자본은 지난 10여년 만에 유상감자와 배당이익 등으로 3118억원이나 챙겨갔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만도를 1조원 이상으로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부도 당시 대표이사는 그 뒤로도 직책을 계속 유지했는데, 연봉 70억원이 넘고 스톡옵션까지 받았다는 보도를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혹자는 ‘먹튀’도 정당한 것이라지만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희생으로 오늘에 이른 만도의 경우, 그 모든 것이 줄줄 새어나가는데, 상식이 있다면 어찌 이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소망과 달리 ‘케이케이아르’(KKR)라는 미국계 사모펀드가 인수의사를 밝히면서 또다시 긴장감을 감돌게 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산업은 경제 발전과 국가 기간산업 구실을 해 왔다. 고용효과는 물론이고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국내 대표 부품사로 자리잡아 왔고, 사회기업•공기업적 특성을 갖는 (주)만도가 더는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국부유출은 물론이고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큰 해가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자본의 흐름에는 국경이 없어지고 있지만 자본에는 국적이 있다'라는 장하준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피부에 와 닿는다. 이익 최대화를 노리는 외자의 속성을 염두고 두고 그들의 힘을 우리 이익에 활용하는 '안보이는 샅빠싸움에서 상대방의 힘을 활용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때 외자유치가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지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제일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재매각해서 막대한 이익을 본 칼라일이나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3천억원 정도를 챙겨간 론스타 사례에서 드러나듯, 외자유치는 실속없이 투기자본한테 국내기업을 헐값에 인수해서 비싼 값에 되파는 길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외자유치는 원래 국외 선진산업 기술을 끌어오고자 하는 데도 기본목적이 있었지만, 이 취지를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서글픈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론스타측의 반박논리도 나름은 근거를 갖추고 있고,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로선, 론스타에 편법과 불법이 있으면 엄정하게 법대로 책임을 묻는 일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 무조건 국민감정을 앞세워 "세금 내라"고 윽박지를 일은 아닌 것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히려 법적 허점을 내다보지 못하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한 우리 정부의 무능을 먼저 탓하고 진정으로 침착하게 반성하는 큰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국력도 이제는 만만치 않게 커졌다. 서두르지 말고 이왕이면 장기투자를 통해 한국 경제에 기술이전, 금융노하우 전수, 인력 양성 등과 같은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올 '우량자본'을 가려 유치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 여력은 확보됐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우리로서는 외국자본이라고 해서 '찬밥 더운 밥 안 가릴 그렇게 다급한 상황'은 이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자본자유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투자에 대한 규제조치로 노키아 같은 세계적 기업을 탄생시킨 핀란드의 성공사례라든가, 중국이 최근 과거의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 조치를 없애 나가고 있는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위기냐 기회냐. 새 정부와 주요 기업들의 전문인들이 이런 시대흐름의 급변앞에서 무슨 '논리적 싸움'만 시끄럽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지혜와 슬기를 닦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실질적 국익(國益)의 결과로 하나 하나 국민앞에 행동으로 증거해 나가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 대전환기, 그것은 국가를 부강(富强)케 하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책무임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타임즈 이병도 주간 [bdlee@e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