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달러인덱스, 올 들어 8.7% 하락…기업 실적 하방 압력이 증시 약세로 이어져
미국 달러 가치가 추락하면서 글로벌 증시를 위협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증시의 벤치마크 지수가 올봄 세계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나타냈지만 이후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상황이 반전돼 뉴욕증시 S&P500지수에 뒤지게 됐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지금까지 8.7% 하락했다. 달러 가치는 유로에 대해 10.4%, 영국 파운드 대비로는 6.0%, 일본 엔화에 비해서는 5.5% 각각 떨어졌다. 우리나라 원화도 지난 주말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날 달러에 대해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1119.0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3.1원 하락(원화 강세·달러 약세)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예상치 못한 달러 가치 하락으로 유럽과 일본 기업 실적이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 증시 약세로 이어졌다. 글로벌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범유럽 증시 벤치마크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지난 5월 22일 이후 3.3%, 영국 런던증시 FTSE100지수는 1.4% 각각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3.1% 오른 것과 대조된다. 5월 22일은 달러 가치가 지난해 미국 대선 이전 수준으로 후퇴해 그동안의 상승폭을 전부 반납한 시점이다.
프라이빗뱅크 UBP의 마틴 모엘러 글로벌 증시 대표는 “유럽 기업 실적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통화”라며 “유로가 계속해서 강세를 보이면 미국은 이득을 얻고 유럽은 고통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증시 벤치마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달러로 돈을 벌어들인 이후 이를 자국 통화로 환산해 실적을 발표하기 때문에 환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이들 기업 실적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10% 오를 때마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기업의 순이익은 4~5%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5월 중순 이후 애널리스트들의 유럽 기업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고 WSJ는 전했다.
BNP파리바의 앤킷 기디아 투자전략가는 “달러 약세로 자동차 부품과 기술, 식음료와 소비재 부문의 유럽 대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들 기업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상당 기간 본국으로 송금하지 않고 있어 약달러 충격이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난 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유럽 주식 담당 투자전략가는 “지금까지는 비(非) 미국 기업들이 해외 수익을 자국 통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약달러 충격이 왔다”며 “그러나 이런 약세가 지속되면 수출기업의 경쟁력 그 자체가 줄어 실적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보다 달러 약세 리스크에 더욱 취약한 것이 일본이다. 일본증시 닛케이225지수는 7월에 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닛케이225지수와 달러·엔 환율의 상관계수는 지난 5년간 0.9가 넘는 수준을 유지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 수록 둘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일부 신흥시장은 달러 약세 수혜를 누릴 수 있다. 메디오라눔자산관리의 가우탐 바트라 투자 대표는 “러시아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달러 부채가 많았는데 달러 약세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