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현 자본시장부 기자
한 곳은 착한 이미지로 ‘갓뚜기’라는 별명이 붙은 오뚜기이다. 회사와 관련된 각종 미담(美談)이 여론을 타면서 올해만 주가가 20% 올랐다.
반대로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은 지난해 4월 정우현 당시 회장이 경비원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뒤로 1500억 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두 회사의 시사점은 간단하다. 언뜻 보기에 이윤 추구와 무관할 것 같던 기업주의 행위가 기업 가치를 높이거나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국내 투자자들도 나쁜 기업에 투자하길 꺼리고, 가급적 윤리적인 기업에 투자하려고 한다. 이른바 ‘사회책임투자(SRI)’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문화가 바뀐 것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연기금이 나서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연기금의 ‘큰 형님’ 격인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 확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3대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비중은 총운용 자산의 1.14%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의 미온적인 태도 또한 사회책임투자 문화 확산의 발을 잡는 요인이다. 상장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非)재무적 지표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3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지만, 시행지침을 준비해야 할 금융위원회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당초 개정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의무조항을 없앤 것도 금융위였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여야 공통 발의 법안이다.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일반 투자자의 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국민연금과 금융당국의 행동만 남았다. 제2, 제3의 ‘갓뚜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착한 시장’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