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혼빨함멀’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유행시켰습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총투표 수로는 지지를 더 받고도 선거인단이 모자라 대통령이 못 된 그는 환경운동에 뛰어들었고, 환경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고어는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환경도 모두 함께 지켜야 한다”며 이 ‘아프리카 속담’을 소개했는데, 이후 많은 정치 지도자,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 초일류급 프로 스포츠 단장과 코치, 유명 연예인,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이타적 사고’와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혼빨함멀’을 따라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쯤 ‘혼빨함멀’이 유행했지요. 역시 인터뷰 대상이 되거나 강연을 할 정도의 명사들이 덕담(德談) 나누듯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깨인 의식’을 가진 일반인들도 이 대열에 끼었습니다. ‘혼빨함멀’을 제목이나, 한 장(章)의 제목으로 단 책도 19권이나 됐습니다.
하지만 대열 밖에서 “함께 가야 옳다는 생각은 항상 옳으냐”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독을 즐기려고 혼자 가는 사람도 있는데, 혼자 가는 게 왜 나쁘다고 하느냐”는 반론, “함께 갈 때 우정과 연대감이 촉진돼 동행과 친밀해질 수 있는 것처럼 혼자 갈 때는 명상과 사색을 통해 자기 자신과 친밀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혼자, 어떨 때는 함께 가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라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가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또 “혼빨함멀이 아프리카 속담이라는 건 사실이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에 무려 쉰두 개가 넘는 나라가 있으며, 총인구가 10억을 넘는 아프리카 사람 중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는 거지요. ‘이타심’, ‘공동체’ 같은 말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주장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아프리카 속담’을 가장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입니다.
유행한 지 10년이 다 된 ‘혼빨함멀’을 오늘 다시 꺼낸 건 ‘원전 제로 정책’, ‘최저임금 1만원’,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등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굵직굵직한 정책들에 대한 비판 기사들 때문이지 싶습니다.
우리 사회를 밑동부터 흔드는 이 정책들이 과연 ‘제대로, 깊게, 충분히’, 즉 “함께 검토된 적이 있냐”고 묻는 이 기사들은 ‘함께 검토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건, ‘함께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으로 ‘함께 가지 않으려는 걸 보니 멀리(오래) 갈 것 같지 않구나’라는 결론을 유도하려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너네랑) 함께 가지 않아도 (우리끼리) 멀리 갈 수 있어’라는 믿음이라면 결론은 또 달라질 겁니다. ‘일단 5년만 빠른 걸음으로 가면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멀리 갈 수 있는 구조가 되거든’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들 정책들에 대한 비판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는데도 함께 가겠다는 말이 잘 안 들리는 걸 보면 정권 당국자들 사이에는 ‘우리끼리 가겠으니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혼빨함멀’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우빨우멀- 우리끼리 빨리 가고, 우리만 멀리 가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쉬울 것 같지도 않고요. 제일 좋은 건 이 글 부제(副題)-‘빨리 멀리 함께 가면 좋을 세상’을 줄인 ‘빨멀함좋’입니다. 욕처럼 들리는군요. 부제를 ‘빨리 멀리 함께 가면 아름다울 세상’으로 바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