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 유사 복합제 동시다발 개발에 레드오션 변모..세계 최초 조합 복합제도 선점 효과 3개월ㆍ중복투자 과열경쟁 우려
지난 2015년 6월 한미약품은 2개의 고지혈증치료제를 결합한 복합제 ‘로수젯’의 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았다. 로수젯은 고지혈증치료제로 사용되는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복합제다. 한미약품은 새로운 캐시카우를 발굴하기 위해 기존에 없는 조합의 복합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1년여만에 20여개사가 로수젯과 같은 조합의 복합제를 내놓으면서 이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변모했다.
제약사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두 개 이상의 약물을 조합한 복합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수십개의 업체들이 유사 시기에 동일 시장에 뛰어들면서 제네릭 시장과 마찬가지로 복합제 영역도 과열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지난 14일 2개의 고혈압치료제와 1개의 고지혈증치료제를 결합한 3제 복합신약 ‘아모잘탄큐’의 허가를 승인받았다. 아모잘탄큐는 ARB 계열 고혈압치료 성분(로사르탄)과 CCB 계열 고혈압치료 성분(암로디핀)에 고지혈증치료 성분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제품이다.
하나의 약물로 3개의 약물을 복용할 때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제품이다. 환자에게 복용 편의성을 제공하고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고안된 약물이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새로운 조합의 복합제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노림수다.
하지만 아모잘탄큐의 시장 선점 효과는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경쟁업체들이 아모잘탄큐와 유사한 조합의 복합제를 개발 중이다. 종근당, 경동제약, 대원제약, 일동제약, 대웅제약, 보령제약, 유한양행, 제일약품 등이 CCB계열 고혈압약(암로디핀, S암로디핀)과 ARB계열 고혈압약(텔미사르탄, 피마사르탄, 올메사르탄, 발사르탄)에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복합제 개발에 착수했다.
물론 구성 성분에 따라 약물의 특성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상 ‘3제 복합제’의 타깃 시장은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기는 힘들지만 아모잘탄큐와 같은 ‘3제 복합신약’은 조만간 유사 제품들이 동일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판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상당수 복합제 시장에서 국내제약사들이 무더기로 유사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블루오션으로 촉망받는 시장이 단기간에 레드오션으로 변모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한미약품이 지난달 허가받은 3개 고혈압약 복합제(CCB+ARB+이뇨제) ‘아모잘탄플러스’의 경우 일동제약, 유한양행, 삼일제약이 현재 유사 조합의 약물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3개 고혈압약 복합제는 지난 2012년 다이이찌산쿄의 ‘세비카HCT'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시장도 이미 과열 경쟁 구도다. 지난 2013년 대웅제약이 ‘올메사르탄’과 ‘로수바스타틴’으로 구성된 ‘올로스타’를 허가받았고 한미약품, LG화학(옛 LG생명과학), 유한양행, 일동제약 등 10여개 업체가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미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는 지난 2014년 발매된 화이자의 ‘카듀엣’과 카듀엣의 제네릭 40여개 제품이 등장한 상태다. 국내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50여개 업체가 경쟁하는 구도인 셈이다.
두 개의 고지혈증치료제(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로 구성된 복합제의 경우 한미약품을 필두로 동아에스티, 제일약품, 한독 등 28개사가 동일 성분의 제품을 허가받았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허가받은 ‘발기부전치료제+전립선비대증치료제’ 복합제 역시 유유제약, 일동제약, 영진약품, 종근당, 동국제약 등이 개발 단계를 진행 중이다. ‘라록시펜’ 성분의 골다공증치료제와 비타민D(콜라칼시페롤)을 결합한 복합제도 한미약품이 가장 먼저 허가를 받고 알보젠코리아와 일동제약이 뒤를 쫓는 형국이다.
천식·알레르기비염 치료 복합제(몬테루카스트+레보세티리진)와 발기부전·고혈압 치료 복합제(타다라필+암로디핀 또는 텔미사르탄) 역시 한미약품을 일동제약이 추격하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한미약품이 선점한 상당수 복합제 시장은 일동제약이 후발주자로 뒤쫓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특정 업체가 새로운 조합의 복합제 개발을 시작하면 경쟁업체들도 같은 유형의 약물 개발에 나서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제약사들의 R&D전략도 공유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약사들이 복합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절실함 때문이다. 이미 제네릭 분야는 동일 제품이 수십개 포진하는 과포화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더 이상 제약사들의 수익원 역할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제네릭 시장의 성장 한계로 국내 업체들은 복합제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시장성도 불투명하고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신약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수월하고 시장성 예측이 가능하다는 매력에 제약사들이 복합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제네릭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내제약사들이 유사 영역에 동시다발로 뛰어들면서 개발 단계에 블루오션으로 지목받던 복합제 시장도 상업화 이후에는 레드오션으로 빠르게 바뀌는 추세다.
제약사들이 어렵게 복합제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뿐더러 경쟁업체보다 가장 먼저 복합제를 개발해도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 힘든 환경인 셈이다. 고지혈증복합제 로슈젯의 경우 한미약품이 허가받은 이후 3개월만에 후발주자들도 진입하면서 단 3개월의 선점 효과만 기대할 수 있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시장성이 높은 분야라도 수십개 유사 제품간 과당경쟁이 펼쳐지면 제약사들이 한정된 시장을 나눠갖는 구조가 된다”면서 “경쟁업체를 따라가기보다는 차별화된 시장을 창출하고 강점인 영역을 두드리는 전략을 구사해야 출혈경쟁을 피하고 중복투자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도 줄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