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권의 생글센글] 오너의 갑질, 이제는 인권경영을 말하자

입력 2017-07-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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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을 가진 기업문화 정착해야 기업의 성장도 가능하다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은 2007년이다.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는 1981년 공식적으로 노예제도 폐지를 선언하고, 2007년 법적으로 노예 소유를 금지했다. 국제사회가 비엔나회의를 통해 노예 매매 금지를 선언한 것이 1815년이니 근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함에도 불구하고 노예 시대에나 있을 것 같은 유사한 관습은 여러 가지 흔적을 남긴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최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운전기사에게 비인격적인 언행을 반복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기사에게 퍼부은 언행은 비슷한 플롯에서 진행된다. “내가 너에게 돈을 주니, 너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너는 내 소유물이다”와 비슷한 감성이다. 기업의 종업원도 오너의 운전기사도 시민으로서 또 다른 시민인 오너와 동등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이후 인류가 목표로 해왔던 관념이다. 이들 오너들의 관념은 아직 노예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의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정상참작을 받아 낮은 벌금형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과를 지켜보면 하나 같이 개인적인 ‘불찰’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얘기뿐이다. 도대체 불찰이 뭔지 사전을 찾아보니 부주의와 비슷한 의미다. 그러나 오너들이 저지르는 비인격적인 언행을 불찰이나 부주의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인권이라는 관점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그동안 기업과 사회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조차 확보하지 못한 세태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권감성을 기업의 경영에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어떻게 완성하고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업에게 인권에 대한 감성과 제도의 정착을 요구해왔다. 또 기업의 인권경영을 확산하는데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어왔다. 다국적기업의 활동이 커지고, 이들의 진출국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인권경영은 국제기구, 비영리조직, 학계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차별, 노동권, 아동노동, 건강권, 소비자보호, 프라이버시 등의 이슈가 제기되었고 이는 기업의 근무환경, 공급망, 지역사회 등과 같은 기업활동의 본질적인 요소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인권경영이 기업 경쟁력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정부는 2010년 7월에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을 제정해 분쟁지역의 광물규제 규정을 두었고, 미증권거래위원회는 2012년부터 미국의 모든 상장사들이 ‘분쟁지역 광물 사용여부’를 증권거래위원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분쟁지역에서 기업이 활동할 경우 인권침해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공공조달 부문에서도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을 비롯한 인권침해에 연루된 기업들의 조달참여를 제한하는 조치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은 많이 뒤쳐져 있다. 글로벌 수준의 대기업들은 인권경영에 대한 매뉴얼은 갖추고 있으나, 보고서 작성을 위한 죽은 매뉴얼인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은 준법경영조차 버겁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젠 바뀔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대적인 흐름과도 일치한다. 지금 시대는 개인 미디어가 발달했다. 발달한 정도가 아니라 개인이 곧 미디어다. 기업의 작업장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는 당사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나 그 지인의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세상에 퍼져 나간다. 과거에는 언론에 노출된 순간 어떤 사건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언론에 노출된 그 순간엔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한다. 기업활동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전사적인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인권침해는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는 강력한 리스크다.

우선 오너와 경영진이 인권경영을 공부하고 그 의지를 밝혀야 한다. 기업활동에서 수반되거나 수반될 가능성이 있는 인권 침해의 요소들을 점검해 예방조치하고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후교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침해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절차를 제공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인권경영이 단순한 기업의 제도를 넘어 기업의 문화가 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나 한국인권재단 등에서는 기업의 인권 경영을 돕기 위한 자세한 매뉴얼을 갖추고 있으니 이를 참고할 수 있다.

기업과 인권은 오랜 시간, 특히 한국에서 이질적이거나 대립적인 관계로 해석되곤 했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무시했다. 그 우여곡절 속에서 많은 이들은 인권침해의 피해자였지만 목소리를 숨겨왔다.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이유 없이 해고당할 때도, 직장 상사의 성희롱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도, 업무시간에 작업장에서 재해를 당했지만 부주의했다고 매도당했을 때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기업의 사사(社史)에도, 언론에서도 이들의 흔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성장의 방식이 앞으로도 유지되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고민을 해봐야 하는 순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놓치면 산업후진국의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하고 있는 현 상황은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다.

기업의 성장이 세상 모든 이들의 존엄성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상이 상식이 되는, 그런 나라가 진짜 나라다. 모든 이들의 가치를 존중하며 성장하는 기업이, 진짜 기업이다.

고대권 임팩트파트너 코스리 미래사업본부장 (accrea@kos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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