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취사(炊事)

입력 2017-07-1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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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料理)나 조리(調理)라는 말이 원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표현하는 용어가 아니었음을 앞서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만드는 일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취사(炊事)’라는 말을 사용했다. ‘炊’는 ‘불 땔 취’라고 훈독하는 글자이므로 炊事는 직역하자면 ‘불을 때는 일’이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불을 때야 한다. 그래서 불을 때는 일로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를 표현했다. 매우 우회적이면서도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이다. 인간만이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식재료를 날로 먹지 않고 익혀 먹는 인간의 음식 만드는 일을 취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불을 때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동물과 다른 일을 한다는 의미이자, 죽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산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드러내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대한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간단하고 소박한 표현이면서도 인간의 원초적인 존재 가치를 암시하는 용어인 것이다. 사람의 죽음을 표현한 속담에 “연기 안 나는 동네로 갔다”는 말도 있다. 취사라는 말에 내재한 우리 민족의 형이상학적 사고를 볼 수 있는 속담이다.

중국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요리나 조리라는 말이 들어오기 전에 일반적으로 ‘做飯’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할(do) 주, 지을 주’, ‘밥 반’이라고 훈독하는 글자들이다. ‘밥을 한다’는 뜻이다. 취사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현실적인 표현이다. 말 하나를 통해서도 그 민족의 미감과 사고방식을 볼 수 있음이 새삼 놀랍다.

군대에서 식사를 책임지는 병사를 ‘취사병’이라고 하고, 가족을 떠나 혼자 밥을 지어 먹으며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것을 ‘자취(自炊)’라고 한다. 이제는 요리나 조리 앞에서 취사라는 말이 생소하기까지 하지만 실은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용어이다. 본래 음식은 왕이든 백성이든 그렇게 소박하게 지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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