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하티셀그램 재심사기간 만료 앞두고 조사 건수 600건→100건으로 조정..3월 전문가 자문서 '60건 조정' 반대했지만 유병률 등 고려해 조정
시판 후 조사 건수 부족으로 재심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파미셀의 줄기세포치료제 ‘하티셀그램에이엠아이’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보건당국이 조사 의무 건수를 당초 제시한 600건의 6분의 1 수준인 100건으로 축소해주기로 결정했다. 이미 전문가 자문 회의를 통해 파미셀의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고 결정했음에도 추가 자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건당국은 유병률이 낮을 뿐더러 세포치료제의 시판 후 조사 건수를 조정해준 전례가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하티셀그램의 시판 후 조사 의무 건수를 600건에서 100건으로 조정해주기로 결정했다.
시판 후 조사(PMS, Post marketing surveillance)는 새로운 유형의 의약품은 허가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한 이후 안전성ㆍ유효성, 부작용 등 자료를 제출해야만 재심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원칙적으로 신약은 6년 동안 3000건 이상, 개량신약은 4년 동안 600건 이상 시판 후 조사를 해야 한다.
하티셀그램은 시판 승인 당시 6년 동안 시판 후 조사 600건 이상을 수행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허가받았다. 재심사 기간은 허가일로부터 6년이 지난 올해 6월30일이다.
올해 초 파미셀은 시판 후 조사 건수가 600건에 못 미치자 조사 대상자 수를 600건에서 60건으로 조정해달라고 식약처에 요청했다.
식약처는 지난 3월 전문가 자문 회의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에서 이 안건을 논의했다. 중앙약심위원회는 "파미셀 제출한 ‘하티셀그램'의 재심사를 위한 증례 수 조정(600례→60례)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한 위원은 “600례에서 60례로 조정할 때, 나타나지 않았던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은 200분의 1에서 20분의 1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95% 확률로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부작용을 찾아낼 가능성이 낮아진다”며 조사 건수 조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하티셀그램은 최악의 경우 허가취소 위기에 처했지만 재심사 기간 만료를 앞두고 최근 가까스로 식약처로부터 시판 후 조사 건수를 100건으로 조정받는데 성공했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신약 등의 재심사에 필요한 자료의 일부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조사대상자의 수가 부족한 경우 포함) 판매업무 정지 3개월 처분을 받는다. 행정처분 기간에도 자료 제출에 실패하면 2차 처분으로 판매금지 6개월 처분이 이어진다. 2차 처분 기간내에도 재심사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허가가 취소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하티셀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질병의 유병률이 낮고 세포치료제라는 특성상 환자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시판 후 조사 의무 건수를 100건으로 낮춰주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또 다른 세포치료제의 경우 시판 후 조사 의무 이행 건수를 100건으로 조정해준 전례가 있다는 게 식약처 측 설명이다.
식약처는 조사의 성실성, 제품의 안전성, 제품의 효용가치 등을 고려해 조사 건수를 조정할 수 있다. 환자 수가 부족하거나 판매량이 많지 않은 제품은 식약처와의 논의를 거쳐 재심사 기간 또는 시판후 조사 건수를 조정해주기도 한다.
하티셀그램의 누적 처방 건수가 1000건이 넘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적응증으로 부여받은 `흉통 발현후 72시간 이내에 관상동맥성형술을 시행, 재관류된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서의 좌심실구혈률의 개선` 용도가 아닌 허가외 사용(오프라벨, Off-label use)이 많을 것으로 식약처는 추정하고 있다. 파미셀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티셀그램은 총 265건 출하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파미셀 측은 "시판 후 조사를 진행할 때 환자들이 정보 동의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아 조사 건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약심에서 이미 ‘60건 조정 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치료제’라는 상징성 때문에 약심의 결론과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식약처는 약심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권고를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약심의 권고를 따르는 행정을 펼쳤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3월 열린 약심에서는 파미셀이 요구한 60건에 대한 인정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시판 후 조사 의무 건수를 600건에서 60건으로 조정해주는 것이 타당한지를 논의했을 뿐 조사 대상을 줄이는 것 자체가 당시 안건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약심에서 일부 위원은 조사 대상을 다소 줄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도 이번 조사 건수 조정에 반영됐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실제로 3월 약심에서 한 위원은 “조사례수를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심근괴사가 일어난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일 수도 있기 때문에 품목취소로 사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파미셀은 오는 9월까지 100건의 시판 후 조사 자료를 제출하면 행정처분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식약처의 신약 등의 재심사 기준에 따르면 재심사 대상 기간 중 시판 후 조사를 실시한 뒤 그 기간 만료 후 3개월 이내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파미셀 관계자는 “제출 시한 이내에 시판 후 조사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