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대학원생
이야기 속 여자의 이름은 ‘릴리’. 그녀가 처음 살인을 저지른 건 십대시절, 부모님 집의 식객이던 화가 쳇을 죽인 일이다. 그때 그녀가 쳇을 죽인 것은, ‘이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쳇은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를 강간하고 죽이기에 적합한 때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릴리는 강간ㆍ살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발생했다. 바로 작년 한 술집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모르는 여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비슷한 사건 같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지하철에서 어깨를 치고 가는데 보니까 다 여성이었다,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내가 지각하게 하려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앞을 가로 막는다, 등 사소하지만 기분 나쁜 일들은 다 참아왔는데, 직업적인 부분에서까지 음해를 하니 더는 못 참겠더라. 이러다가는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먼저 죽여야겠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사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같은데도, 한편으론 읽으면서 어느새 그녀가 잡힐까 걱정하게 될 만큼 매력적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쳇은 릴리를 강간하고 죽이려고 했던 걸까? 또 릴리가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해 죽인 사람들은 정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책은 1인칭 시점이다. 자 이제, 앞서 이야기한 실제 사건 속 가해자와 릴리의 첫 범행 동기가 겹쳐 보이지는 않는가?
세상에는 정말로 ‘죽어 마땅한’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판단은 누가할까? 소설 속 릴리는 사람들이 보통 막연히 생각만 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한편, 이것이 실제 일어났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끼게도 해준다. 설마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