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사드 비용 10억 달러(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담’ 발언의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이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 안보수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양측의 발언이 엇갈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느닷없는 사드 배치 비용 논란이 불거진 것은 미군 최고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앞두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잠재적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한국에 배치 중인 사드는 약 10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라며 “왜 미국이 이런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한국에 사드 비용을 그들이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뜨거운 감자’가 되자 한·미 안보수장은 29일 전격 전화통화를 했다. 해당 전화 통화는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요청으로 약 35분간 이뤄졌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통화 직후 공식보도 자료를 내고 우리 정부가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맥매스터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의 사드비용 부담’ 발언을 사실상 정정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맥매스터 보좌관이 전화통화를 한 지 하루도 채 안 돼 김 안보실장의 전언과는 다른 발언을 내놓으면서 사드 안보 비용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4월 30일 ‘폭스뉴스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합의를 지키기로 상대방(김 안보실장)에 약속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 기존협정은 유효하며, 우리는 우리 말을 지킬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사드 재협상 방침도 언급했다. ‘사드 배치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냐’는 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고 “핵심은 사드와 관계된 것, 우리의 (동맹)방위와 관련된 것은 다른 모든 동맹과 마찬가지로 재협상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답변했다.
전문가들은 연말 시작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비용 문제를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기 위한 협상용 지렛대로 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의 방위비 인상용 전술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문제에 대해서도 나토를 ‘무용지물’이라며 회원국들이 자국 내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분담하지 않으면 나토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조종하겠다고 압박했다가 “내가 예전에 나토가 쓸모없다(obsolete)고 말했는데 이제는 더는 쓸모없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의 합의를 흔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 발언에 대해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 사드 배치로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까지 당했다면서 사드 배치는 한국에만 좋은 것이 아니고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한반도 위기와 대선 정국을 맞은 한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벤 카딘(메릴랜드) 의원도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한국은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북한 위기와 관련해선 더욱 그렇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