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중심 잡고 살자

입력 2017-03-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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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에 들어가면 짧게는 이틀이나 닷새, 길게는 열흘도 있다 오는 아들 녀석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주말에도 일하고, 월요일 새벽에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하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 하지만 아직 미혼이니 지금은 일 중심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격려한다. 승진이나 연봉에 너무 연연해하거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적성에 맞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직무에 욕심을 내보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1997년 12월 31일,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D사를 그만두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니 다들 의아해했다. “왜 그만두느냐?” “그만두면 뭘 할 거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적지 않은 연봉에 기사와 비서, 차량, 업무활동비와 헬스장 회원권, 400여 개의 지점을 거느리는 경영자로서의 매력까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 사례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주인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결재와 회의에, 생각 없이 사람 만나고 회식하다 보면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아내와 다툴 때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소모당하고 있다는 느낌, 계속 이렇게 살면 내 삶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을까? 사직하고 싶은 속마음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아내는 찬성도 하지 않았지만 반대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했다.

일과 가족이 양립할 수 있고 내 적성에 맞으며 나이 들어도 오히려 연륜을 쌓으면서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찾기 위해 2000년 1월 1일 한국가정경영연구소를 열었다. 3년간 수입이 없어도 버텨 보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른 일을 찾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일이었다. ‘가족’이라는 내 연구 주제와 관련 없는 일은 벌이지 않기, 기사와 비서를 다시 두어야 할 만큼 바쁘게 안 살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20년, 30년 후에도 꾸준히 하기 등 처음에 세웠던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하자” “내 사업에 투자 좀 해 달라” “큰일 하실 분이 왜 이러고 있느냐”며 유혹도 하고 제안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직원 수나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나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광화문에 있던 연구소를 경기도 양평으로 옮기고 난 뒤에는 사무실 위치나 규모로 나를 저울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체면이나 인기, 명예나 권력 등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 잡으면서 연구소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평생 하고 싶은 ‘나의 일’을 찾았고 집안에 일이 있으면 열 일 제치고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삶의 여유도 찾았다. 내 일이 우리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수입은 적지만 큰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내 삶에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음도 얻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참기쁨을 느끼며 내 삶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진정한 부자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나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 그런 기특한 결정을 40대 초반에 할 수 있었던 ‘학중이’가 대견스럽고 날 믿고 기다려 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아들 녀석에게 “언제든 퇴사할 수 있는 준비를 해라. 회사에 너무 의존하지 마라”는 얘기는 아직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 중심, 물질 중심의 생활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삶을, 회사 때문에, 누구 때문에 누리지 못한다고 변명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수입이 조금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중심 잡고 사는 좋은 남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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