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인정신, 기업가 정신

입력 2007-11-1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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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이 지금 온통 북새통이다. 세인의 관심이 김경준이라는 한 범죄혐의자에게 집중돼 있다. 이같은 관심은 그가 현 정국의 판도를 가름지울 수 있는 이른바 ‘핵폭탄급 비밀’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반 걱정반의 흥미를 사람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던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사람들이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게 됐다.

근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BBK 사건은 범죄행위로 볼 때는 김경준이 저질은 금융사기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이 사건의 한 가운데 서 있어서다. 그래서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후보이고, 김경준은 조연이다. 금융사기 사건으로 처리돼야할 이 사건의 파장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이후보가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로서 흠집이 없어야 하는데 여당은 이후보가 그렇지 않다고 연일 떠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여당은 아니할 말로 김경준이 제2의 김대업이 돼서라도 이후보를 완전히 흔들어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여당의 이런 자세와 입장은 누가 봐도 떳떳치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에게 빌미를 던져준 사람은 이후보 자신이다. 속된 말로 이명박이 없으면 김경준도 없다. 그러니 BBK사건의 중심에는 이후보가 있다. 검찰 수사 결과 그가 과연 결백하냐 아니냐 하는 진위여부만 가리는 절차가 남았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 이후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BBK 사건은 그의 결백여부가 밝혀지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건 구조가 워낙 복잡하지만, 이후보가 김경준과 사업하다 중간에 문제가 생겼고, 김경준은 회사돈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이 후보가 그 회사의 실소유주냐 아니냐를 가리는 게 이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대선후보로 나올 만큼 큰 뜻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그런 범죄혐의자하고 사업을 했으며, 또 했으면 말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도록 일을 만들어 놓았는지 필자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 동안 이후보가 해놓은 일 중에 말썽난 게 여러 개 있다. 최근 그의 아들에 관한 위장 취업 문제도 말썽의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자녀들을 위장 취업시켜 탈세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일을 이후보가 미리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몰랐는지는 모르지만, 나라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으로서는 주변에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돈을 버는 사람에게는 대체로 두 가지 형태의 부류가 있다. 하나는 상인(商人) 정신에 의해 돈을 버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업가(企業家) 정신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전자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벌면 그 돈을 자기 지갑에 넣은 뒤 지퍼를 단단히 채워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그에게 들어간 돈은 기업에 재투자되거나 사회 공익부분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개인의 이익과 소비만을 위해 돈을 쓴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네돈도 내것, 내돈도 내것”이라는 이기적 타산이 강하고, 사회정의나 공익 실현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배만 불리고 개인 재산을 늘리는 데만 신경쓴다. 이런 사람이 번 돈은 개인 호주머니에 속에 맴돌 뿐 사회에 재투자되지 않는 상업자본으로 남는다.

기업가 정신에 입각해 돈버는 사람은 건전하게 기업을 경영하여 적정이윤을 남기고, 고용을 안정시킨다. 그는 또 남은 잉여가치를 기술개발이나 시설 투자 등 산업발전에 재투자해 궁극적으로 사회가 발전하는데 기여한다. 이익을 개인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기업이나 사회 공익분야에 재투자해 산업자본화한다. 산업자본화한 잉여자본은 다시 회사를 발전시키고, 고용을 늘리고, 보다 좋은 재화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이 모든 행위는 결국 기업과 종사자, 사회를 위하는 공익행위로 귀결된다. 기업가 정신으로 경영하는 기업가는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재투자하는 산업자본으로 만든다.

상업자본은 그 돈이 개인 용도로만 사용될 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산업자본으로 재투자되지 않는다. 이런 상업자본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 그리고 상업자본을 추구하는 기업경영자가 많아지면, 그 사회는 경제 주체 간 갈등과 마찰로 충돌하게 된다. 심할 경우 그 사회는 붕괴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BBK와 관련하여 이명박후보와 김경준이 당시 행한 기업 활동은 기업가 정신에 의하기보다 상인정신에 더 충실했다는 느낌이 든다. 김경준은 위법과 탈법을 밥먹듯 하다가 수백억원의 투자자 돈을 횡령해서 미국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며칠 전 붙잡혀 귀국하면서 실룰실룩 웃는 모습이 국민을 얕보는 듯 해서 정말 보기 역겨웠다. 당연히 중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후보도 그가 기업가정신에 의거해 기업활동을 했다는 반증자료가 지금까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돈을 벌어서 사회에 또는 공익을 위해 재투자했다는 얘기를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부를 늘리는 데만 신경썼다. BBK 사건과 관련해서도 그가 사회공익을 위해 이 사업을 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외려 결과적으로 반사회적인 추태만 잔뜩 남겨놓았다. 개인 차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 것이다. 그의 아들 위장취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회 공인으로서, 그리고 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진정한 기업가로서 행동하려 했다면 그 같은 위장 취업 문제가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 회사에 자식을 위장 취업시켜 탈세를 해왔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는 그저 돈을 벌거나 아끼기 위해 탈법을 방조 내지는 묵인한 그런 사람이었다.

BBK사건이나 위장취업 등 그 간 이후보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관찰해보면, 그는 기업가 정신에 충실하기보다 상인정신에 투철한 ‘장사꾼’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시대는 상인정신이 아닌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경영인과 정치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 돈버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을 주고 그래서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는 공익 지향의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공익 지향적 인격체야말로 이 시대를 선도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親사회적 인간상이다.

조만간 BBK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다. 그리고 이후보의 연관성 여부가 밝혀질 터다. 건전한 시민들의 입장으로는 그가 이 사건에서 결백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가 상인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또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 역시 재임 중에 또 다른 형태의 실정(失政)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적이 걱정스럽다. 혼란과 퇴보는 지난 10년만으로 충분하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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