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4차 산업혁명과 공정거래

입력 2017-02-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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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융합형 ICT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급속도로 재편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무한 혁신 경쟁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혁신 경쟁의 룰에 해당하는 두 가지 축이 바로 공정거래제도와 지식재산제도다. 공정거래제도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여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기업의 혁신을 조장한다. 한편, 지식재산제도는 창의·혁신의 성과물인 지식재산권을 독점적으로 보장하여 혁신의 동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지식재산권 분야의 공정거래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양자 간의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표준특허권의 남용이다.

지난해 말, 공정위는 퀄컴의 특허권 남용 행위에 대해 사상 최대의 과징금과 시정 명령을 부과하는 등 엄중히 제재했다. 퀄컴은 CDMA, LTE 등 이동통신 표준 선정 당시 국제 표준화기구에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특허 라이선스를 약속”(FRAND 확약)함으로써 경쟁 기술을 제치고 자신의 이동통신 기술을 표준특허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 약속을 깨고 경쟁자에게는 특허 라이선스를 거절하면서, 독점력 있는 부품을 앞세워 휴대폰 제조사에 부당한 특허 라이선스 조건을 강요했다. 공정위는 비록 특허권자의 권리 행사라 하더라도 시장의 경쟁 질서를 교란하고 혁신을 저해한다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퀄컴 사(社)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를 비롯해 애플 사(社), 소비자들로부터 연쇄적으로 소송을 당하고 있다.

표준특허권 남용 문제가 공정거래 이슈가 된 것은 이번 퀄컴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1990년대 중반 델(Dell) 컴퓨터나, 2000년대 램버스(Rambus)가 표준특허 보유 사실을 숨기다가 기만적으로 특허료를 요구한 사건이나, 최근 모토로라(Motorola) 등 통신 표준특허 보유자가 라이선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과도한 특허료를 받아내기 위해 ‘판매금지청구권’을 행사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특허권 주장을 주요 사업 모델로 하는 소위 ‘특허괴물’과 제조기업 간 특허료 분쟁도 빈발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기술 간 호환성(Compatibility),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이 강조되는 미래 기술융합 환경에서 기술 표준화의 확산은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표준특허의 중요성은 갈수록 부각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사물인터넷, 무인·전기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표준기구(ISO) 등을 중심으로 기술 표준화 작업이 이미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차세대 ICT 분야에서 혁신 경쟁을 도모하고 시장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표준특허에 대한 공정거래 규제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주요 경쟁 당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공정위도 지난해 말 지식산업감시과를 신설하여 ICT, 제약, 바이오 등 혁신 경쟁이 치열한 지식산업 분야에 대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자유롭고 공정한 혁신 경쟁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위는 정당한 지식재산권의 확보와 행사는 적극 장려하되, 시장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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