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현 자본시장부 기자
거래소의 사업 방향을 결정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수장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충격을 주는 이유는 취임 이후 줄곧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은둔하던 정 이사장의 갑작스런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했던 이는 많지 않다.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 중단은 정 이사장의 자기부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이사장이 거래소 이사장에 낙점된 것은 금융투자업계에서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불리는 그가 정치권과 긴밀히 소통해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 스스로도 불과 3개월 전 취임사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로 밝힌 바 있다.
인사를 두고도 말이 많다. 칼을 빼 들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인사 결정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고 성급했다고 보고 있다. 정 이사장이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은 지난 14일이었고, 인사 단행은 16일로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정 이사장이 이번에 임원으로 승진시킨 한 인사는 금융위 부위원장 시절부터 아꼈던 인사라는 소문이 돈다. “일괄 사표 제출은 ‘코드인사’를 위한 요식 행위였다”는 극단적 비판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거래소 로비에는 여전히 정 이사장 취임 당시 거래소 노조가 설치한 ‘낙하산 저지’ 천막이 있다. 거래소와 업계 안팎에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조치가 오히려 정 이사장의 리더십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