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이건희 전(傳)’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와 명예 훼손에 따른 위자료 지급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이흥권 부장판사)는 이 전 부회장이 이 책의 저자인 심정택 경제칼럼니스트와 출판사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전 부회장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책에는 삼성생명 소속 부동산팀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2005∼2006년께 이 전 부회장의 강남 부동산 매입도 같이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담겼다.
또 이 전 부회장이 노무현 정부와의 사전 협상을 통해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노무현 정부의 총리로 만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밖에 ‘삼성특검’에서 드러난 4조원의 차명 비자금의 사용·배분과 관련해 이 회장과 이 전 부회장의 갈등으로 이 회장의 심근경색이 발병했다는 분석과 함께 이 전 부회장 재산이 5조원 정도이며 이 전 부회장이 이 회장의 여자 문제를 만들어놓고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나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전 부회장은 이런 내용이 명백히 객관적인 사실에 반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정보도를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이 전 부회장의 주장만으로는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이 허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부동산 매입 부분이 “표현에 있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홍 전 주미대사를 총리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적은 부분에 대해선 “원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고교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있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만나며 친하게 지내왔던 게 사실이고, 따라서 삼성 측이 원고를 통해 당시 정부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와병과 관련해선 “이 회장의 건강 악화와 관련된 일부 견해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이 전 부회장의 재산이 5조원에 달한다고 한 데 대해선 “원고는 허위라고만 주장할 뿐 자신의 재산규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하거나 증거를 제출하고 있지 않다”며 “설사 5조원이라는 수치가 부정확하거나 상당 부분 과장됐다 해도 허위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부회장이 이 회장의 여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다는 부분도 “실제 일화를 소개한 게 아니라 원고에 대한 세간의 평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해 기술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400쪽 넘는 분량 중 원고와 직접 관련된 부분은 분량상 5∼6쪽에 불과하며 그룹 내 원고의 지위와 역할 때문에 불가피하게 언급한 것일 뿐 의도적으로 폄훼하기 위한 저술로 보이지 않고, 원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상당 부분에 이른다”며 “손해배상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