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본 유한회사](下) 대주주 ‘꼼수배당’에 ‘국부유출’ 논란

입력 2016-11-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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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순익 175억인데 英 대주주 270억 배당

‘소규모 기업 부담완화’ 상법개정 취지 무색

대형사도 ‘유한’ 전환… 규제 피해 ‘배당잔치’

해외명품 한국지사, 영업익 본국유출 논란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던 옥시는 2010년 중간배당으로 270억 원을 대주주인 영국계 레킷벤키저피엘씨에 송금했다. 당해 옥시 감사보고서에 명시된 당기순이익 175억 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옥시는 모기업 관계사와 경영자문계약을 체결해 2009~2010년 자문수수료로 141억 원을 지급했다. 관계사에도 로열티로 162억 원을 줬다. 특수관계자에게 대여한 돈과 이자는 총 253억 원이다.

반면 2012년부터는 이런 내용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옥시가 2011년 12월 12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 취지와 어긋나는 유한회사 ‘꼼수’…어디까지 허용? = 상법에서 유한회사 제도를 둔 취지는 소규모 기업의 부담 완화다. 재무제표 작성을 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 기업들에 규제 장벽을 낮춰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규모나 영업역량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유한회사들은 배당을 하기 어렵거나 규모가 소액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11년 상법 개정 후 우후죽순 늘어난 ‘대형 유한회사’들은 일반 주식회사보다 높은 수준의 배당을 하며 제도 취지를 무색게 하고 있다.

국내 취업정보를 이용해 영업하는 잡코리아는 2005년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이 미국 몬스터월드와이드에 지분 100%를 넘긴 뒤 신분이 바뀌었다. 몬스터그룹은 2011년 잡코리아를 유한회사로 변경하기까지 약 5년간 당기순이익의 83%에 이르는 505억 원을 배당으로 챙겼다. 이후 배당 상황은 역시 깜깜이다.

관련업계에서는 몬스터그룹이 2013년 잡코리아를 사모펀드 H&Q AP에 매각한 시점까지 배당으로만 150억 원 이상을 추가로 챙겨갔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몬스터그룹은 불과 몇년 새 매각대금 1900억 원을 포함해 최소 25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챙긴 셈이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3위인 BHC는 2014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 등기했다. 2013년 6월 미국 씨티그룹 계열 사모펀드 운용사인 CVCI에 지분 100%가 넘어가 주인이 바뀐 뒤 일어난 일이다. CVCI는 인수 당시에만 24억 원을 중간 배당으로 챙겼다. 이후 배당 현황은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버버리, 페라가모, 프라다, 불가리, 스와치 등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시장에서 번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본국으로 유출하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위 5개 명품업체가 본사에 배당한 금액 규모가 1117억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백복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4월 ‘외국인 투자유한회사의 배당성향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다른 법인 형태보다 외국계 투자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유한회사의 배당 수준이 유난히 높다고 지적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표본을 이용해 검증한 결과 내국인투자 유한회사는 물론 일반 주식회사보다도 외국인투자 유한회사의 배당 수준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백 교수는 “최근 외국인 투자기업은 유한회사 형태를 통해 국내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외국인투자유한회사의 재무성과와 배당지급 능력이 내국인투자 유한회사보다 월등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배당성향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일반 투자자는 물론이고 금융당국이나 증권업계 전문 종사자에게도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대규모 기업이 점차 증가하는 것은 시장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라며 “애초 유한회사 취지를 살리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한회사형 펀드에도 몰리는 외국인 = 일반 기업의 배당과 로열티 수입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펀드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23일 금융투자협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설정된 집합투자기구(펀드)의 약 97%는 투자신탁형이다. 나머지 3% 중 2%가 투자주식회사, 0.6%가 경영참여전문사모펀드(PEF), 나머지 0.4%가 투자유한회사다.

투자유한회사 형태의 펀드는 2014년 처음으로 4000억 원 규모가 설정됐다. 이후 3년 만인 올해 1조8429억 원으로 규모가 네배 늘었다.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전문가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유한회사 형태 펀드 설정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부동산, 실물 등 특수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유한회사형태로 설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신탁형인지 회사형태인지에 따라 이익에 따른 과세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투자자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 중 유한회사형 펀드 설정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이지스자산운용으로 약 7999억 원 규모를 운용 중이다. 이어 도이치자산운용(2674억 원), 베스타스자산운용(1820억 원) 등이 유한회사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가 신탁형보다 회사형 펀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도 회사형 펀드 설정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상 신탁형과 주식회사형, 유한회사형 등으로 펀드 설립 근거를 구분 짓고 있긴 하지만 운용에 있어서 큰 차이점은 없다”며 “별도로 관리ㆍ감독 방안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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