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의 부당한 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 첫 재판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유리하게 주식매매를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전지원 부장판사)는 22일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 등 4명이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소액주주 측은 이날 국민연금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미공개주요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정보를 이용해 옛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판매하고, 제일모직 주식은 사들여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삼성그룹 오너에게 유리하게 결정됐다는 얘기다. 소액주주 측은 “삼성이 국민연금에 합병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찬성을 구한 정황들이 언론 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자문 결과와 달리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점도 지적했다.
국민연금 측은 이에 대해 “추측이나 의혹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 측은 합병 결의 전 옛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으로 판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상적인 투자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제유가 급락으로 건설업종이 불황이었고, 지난해 상반기 어닝쇼크 발표 이후 모든 기관투자자가 삼성물산 주식을 내다팔았다고 해명했다. 2014년 말부터 삼성그룹이 지배구조개편을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수 있다는 정보가 시장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합병 정보는 '미공개주요정보'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국민연금 측은 삼성물산 합병이 미공개정보 이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쟁점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삼성물산 주식 대량 매도는 합병 결의 이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소액주주 측은 이날 검찰 수사 등을 언급하며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간 내부 공모 부분이 보인다”고 밝혔다.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1일 삼성과 국민연금의 유착 의혹 관련 수사에 착수해 조사 중이다. 검찰 수사 결과 등에 따라 소액주주 측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해서도 추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원고 측은 다음 달 15일 선고 예정이었던 삼성물산 합병 무효소송도 검찰 수사를 고려해 변론을 재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낸 주식매수 가격이 적정한지에 관한 법적 분쟁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점을 고려해 재판 일정을 나중에 다시 잡기로 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5월 ‘삼성물산 측이 합병시 제시한 주식매수가가 너무 낮다’며 5만7234원이던 매수가를 6만6602원으로 새로 정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찬성률 69.53%로 합병계약서 승인을 가결했다. 11.21%의 지분을 갖고 ‘캐스팅 보트’였던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옛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합병무효소송을, 국민연금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