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코스카저널 주간
빨대면 빨대지 웬 ‘황금빨대’냐고? 황금빨대는 왕의 빨대다. 역사상 빨대는 먼 옛날, 오늘날 이라크 남부에서 문명을 이룩했던 수메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들어 사용했다. 수레바퀴를 제일 일찍 생각해내고 이걸 단 전차로 기동력을 확보해 당시의 세계를 제패한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편하게 마시기 위해 빨대를 만들었다. 맥주가 발효할 때 생겨나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을 마시지 않으려면 빨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기원전 3000년쯤 조성된 수메르인 무덤에서 황금으로 된 빨대가 발견됐는데, 이 황금빨대가 현존하는 빨대 중 가장 오래된 빨대라고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은 전한다.
수탈과 착취의 구조가 빤했을 고대 수메르 사회에서 황금으로 된 빨대로 항아리에 든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왕과 그 주변의 소수 인물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왕은 큼지막한 나무 그늘 밑 의자에 앉아서 하인이나 시녀들이 양쪽에서 펄럭펄럭 부쳐주는 종려나무 부채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쪽쪽 빨았을 것이다. 소수의 귀족과 환관도 왕의 허락 아래 맥주통에 빨대를 꽂았을 것이고….
빨대는 다른 동물에 달라붙어 피나 체액을 빨아먹는 작은 벌레들 주둥이에도 달려 있다. 어떤 벌레들은 뾰족하고 길쭉한 빨대를 꽂는 순간 마취성분도 주입, 그 동물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천천히 체액을 빨아 마신다고 한다. 음미하듯. 몸서리가 쳐진다. 재벌 회장들도 그렇게 마취된 채 돈을 뜯겼을 듯하다.
신문과 방송들이 우리나라 황금빨대들의 활약을 보도할 때마다 내 목 뒤에도 빨대가 박히는 느낌이다. 아물지 않은 구멍에 또 빨대가 꽂히고, 피가 흘러 축축한 느낌이다. 내년 예산안에 숨겨진 소위 ‘최순실 예산’이 1796억 원이며 이게 예산으로 확정되는 순간 그들의 황금빨대가 무자비하게 꽂혔을 것이라는 해설 기사가 대표적이다.
기사들은 그들이 동계올림픽에서 빨아먹고, 한류 창달 사업에서 빨아먹고, 각종 스포츠를 발전시킨다며 빨아먹고, 나라 돈 빨아먹고, 기업 돈 빨아먹고, 큰 놈 것은 찍어 눌러 빨아먹고, 작은 놈 것은 공갈쳐 빨아먹었거나 빨아먹으려 했다고 전한다. 이 나라 이 사회에 빨아먹을 게 지천이라는 얘기인데, 그게 결국 내 세금이고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며, 저들이 안 빨아먹었으면 내가 세금 덜 냈을 것이고 내 주머니 이렇게 홀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저자들의 빨대가 꽂힌 곳은 정부 곳간이나 기업 금고가 아니라 바로 내 목 뒤, 귀 아래가 맞다.
저들에게 황금빨대를 허(許)한 대통령은 질서 있게 일찍 물러나는 게 순리이며, 그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남은 도리일 텐데 저 구중궁궐 안에 박혀 꼼짝도 않고 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무슨 심사인지 알 수도 없다. 정말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5000만 국민 모두가 몰려가 내려오래도 안 내려올 정도로 고집이 센 걸까? 대통령에게도 최순실 무리의 빨대가 꽂혀 있는 걸까? 빨대가 꽂히는 순간 마취된 후 아무 의식 없이 좀비처럼 이끌려가고 있는 걸까?
지푸라기 대롱을 닮아서 빨대는 영어로 ‘Straw’다. 혹 영어에도 우리말처럼 ‘빨대를 꽂아 돈을 빼먹는다’와 비슷한 표현이 있나, 있으면 어떻게 쓰고 있나가 괜히 궁금해 눈 비비며 찾아보았더니 ‘빨대를 꽂다’는 뜻인 ‘Put a straw on’은 문자 그대로 주스나 음료를 마시기 위해 빨대를 꽂는다는 의미일 뿐 돈을 빼먹는다는 뜻은 없다. ‘bloodsucker’라는 단어가 돈 빼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blood(피)’와 ‘sucker(빨아먹는 사람)’의 합성어이다. 드라큘라 같은 ‘흡혈귀’가 원뜻이지만, 남의 돈을 빨아먹는 존재도 그렇게 부른다고 나와 있다. 흡혈귀 외에 숙주의 몸에 짝 달라붙어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bloodsucker’도 있다고 사전들은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황금빨대들, 기생충처럼 슬쩍슬쩍 빨아먹지, 무슨 욕심이 생겨 드라큘라처럼 우리 목을 콱 물다가 들통이 났나. 안 그랬으면 훨씬 더 오래오래 영화를 누렸을 텐데.
‘straw’라는 영어 단어가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으로 비롯된 이 엄중하기 그지없는 시국과는 관련이 전혀 없나 보다 생각하며 사전을 덮으려는데 ‘last straw’라는 숙어가 보였다. ‘마지막 한 방, 결정타’라는 뜻이란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왜 ‘결정적 한 방’으로 사용되게 됐나? 아라비아 사람들은 낙타에 가급적 많은 짐을 실으려 했다. 낙타가 견딜 때까지 짚단을 얹고 또 얹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얹는데 일순(一瞬)에 낙타의 무릎이 꺾이더란다. 낙타의 무릎을 꺾은 지푸라기 하나, 그 마지막 지푸라기를 사람들은 ‘last straw’, ‘결정타’라고 불렀다. 우리 대통령에게 ‘last straw’는 무엇일까, 언제 얹어져 그 고집이 꺾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