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 쓰나미

입력 2016-11-16 18:17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서울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퇴근하는데 승용차 통행료가 1만5000원이고, 경기도 분당에서 광화문까지는 3만원이라면?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막히고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불편하다면? 우리나라라면 난리가 났겠지만 뉴욕시 인근 주민들은 이런 교통 상황을 매일 감내하고 있다. LA, 시카고 등 미국의 다른 대도시의 상황도 별로 낫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이런 상황을 겨냥해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규제 완화와 감세 공약에도 힘이 실리면서 경제성장과 기업 채산성 향상, 물가상승 등에 대한 기대까지 높아져 시중 금리가 급등하는가 하면 뉴욕증시와 달러화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존해온 경기대책을 재정정책 중심으로 전환하는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악순환 고리가 단번에 풀릴 듯한 분위기까지 연출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아무도 풀지 못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영토 정복에 성공한 알렉산더 왕의 신화가 재현된 듯하다.

그런데 정작 뉴요커를 비롯한 대부분 미국인들의 반응은 심드렁하고 경제학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프라 확충에 1조 달러를 투입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서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 정책보다는 토끼는 잡지도 못하고 재정적자만 키운 일본의 실패사례를 먼저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에 대해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한 공로로 정권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가 지난 1일부로 뉴저지주의 유류세를 대폭 인상한 것도 유사한 실패사례로 입에 오르내고 있다. 트럼프 카지노가 있었던 애틀랜틱시티의 파산 등으로 주정부의 재정적자가 심해지면서 도로 보수조차 할 수 없게 되자 유류세를 올렸고 주민들은 주유를 할 때마다 인프라 투자와 재정적자에 대한 경각심을 되살리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금리가 급등하면서 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와 자동차 월납금 부담이 당장 몇 백 달러 늘어나게 되고 애써 장만한 주택 가격은 떨어질 판이니 표정이 밝을 리 없다. 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빈부 차이는 더 심해지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마저 보내고 있다.

트럼프노믹스의 핵심인 감세정책이 추진되면 향후 10년간 세수가 4조5000억 달러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인프라 확충으로 재정지출이 늘고 금리 상승으로 국채 이자부담이 증가하면서 19조 달러 규모인 연방정부의 빚이 걷잡을 수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확산되고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 조치가 기업의 투자·매출·수익 증가로 이어지고 개인소득도 늘어나면 감세액 이상으로 세원이 확충된다는 것이 트럼프노믹스의 논리지만 재정 건전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의회와 재정적자 확대로 세금부담이 늘어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미국인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노믹스는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200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호경기를 구가한 레이건 정부의 레이거노믹스를 벤치마킹했지만 경제공황을 초래한 부시정부의 실패한 정책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규제 완화로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재현되고 겨우 회복한 부동산 경기가 금리 급등으로 다시 침체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세계 경기를 감안해 통화정책을 조절해 왔지만 미국 최우선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피즘(Trumpism)이 자리를 잡으면 이런 공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경제성장률과 금리를 과도하게 높이면 국제수지, 자금이동, 환율 등의 불균형이 커지면서 통상마찰도 심해지는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21개국과 맺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파리기후변화협정과 같이 이미 틀이 잡힌 협정을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바꾸려 한다면 국제공조는 깨어지고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의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고도 실용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도 좌회전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판도를 바꾸겠다는 의욕이 강한만큼 세계 경제의 지각 변동과 쓰나미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그루그만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노믹스가 시행되면 1~2년 반짝 경기가 상승했다가세를 경제성장 잠재력 약화로 다시 냉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의 부침이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쓰나미를 피하면서 경기의 부침을 잘 타는 지혜와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