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정부와 국민의 ‘노후 경유차 추격전’

입력 2016-08-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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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부 차장

1980년대 초, 이른바 ‘자동차공업 발전법’이 있었습니다. 각 자동차 업체는 특정 차종만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법에 따라 현대차는 소형 승용차만, 대우차(당시 새한)는 중형차, 기아산업은 상용차만 개발·생산했습니다. 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특장차는 쌍용차(당시 동아자동차)의 몫이었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길거리에서 SUV를 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자체가 드물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 서슬퍼런 군사정권 아래, ‘전시동원차량 시행령’도 있었습니다. 사륜구동 SUV는 전쟁이 나면 해당 지역 향토사단에 차를 헌납해야 했습니다. 이들 전시동원차는 앞뒤 범퍼에 노란색 동원차량 번호가 붙어있었지요. 여기에 ‘등화관제등’이라는, 못생긴 램프도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를 이유로 절세 혜택도 많이 누렸습니다. 나름 비싼 차값을 지녔지만 세금은 화물차나 다름이 없었지요. 그러나 공업발전법이 해제되고 각 자동차 회사가 다양한 SUV를 내놓으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현대정공과 아시아자동차가 곧바로 SUV를 내놓자, 거리를 질주하는 SUV는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그 무렵 전시동원차량 제도도 사라졌습니다. 군대에도 작전차가 늘어났으니 전시동원차가 필요 없었던 것이지요. 동시에 전시동원차량은 더 이상 감세 명분을 누릴 수 없게 됐고, 곧바로 세금 폭탄을 맞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값싼 기름값 덕에 경유차가 인기를 얻자 정부는 경유값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를 피해 속속 ‘절세형’ 차종을 내놓기도 했지요. 승합차로 분류된 7인승 자동차가 대표적입니다. 세금이 아주 싼 차였습니다. 그러나 절세 혜택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얼마 뒤 또 다른 명분을 내세워 이들 차종의 세금을 더 매겼습니다. 국민이 절세를 노리고 도망가면, 나라는 세수를 앞세워 추격하는 양상이 이때부터 본격화된 셈입니다.

최근 노후 경유차의 수도권 진입제한이 본격화됐습니다. 2005년 이전에 생산된 총중량 2.5톤 이상의 경유차는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까지 진입이 제한됩니다. 수도권 위성도시에서 10여 년이 넘은 구형 SUV를 타고 출·퇴근하는 운전자라면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갖가지 대안도 등장합니다. 진입 규제가 총중량 기준이니 구조 변경을 통해 이 중량을 낮추는 방법도 나왔습니다. 탈출구를 찾아나서는 생계형 운전자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안타깝지만, 조만간 이들의 이런 노력도 정부부처의 추격전(시행령 개정안)에 붙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 특정 차종을 쫓아 세금 부과에 앞장섰던 관계부처가 이번 노후 경유차 시행령에 따라 빈틈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대통령이 미세먼지의 폐해를 짚자, 범정부 차원에서 시작한 미세먼지 감축안입니다. 차종 하나하나를 막아내는 꼼꼼함도 좋지만, 문제의 본질에 맞는 큰 정책을 그렸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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