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신속한 수사가 페어플레이다.

입력 2016-08-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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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산업1부장

리우 올림픽이 시작됐다. 개막식 전 우리나라 축구팀의 피지와의 경기는 8 대 0이라는 쾌거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 204명 모두 최선을 다해 선전하길 응원한다.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에 참가한 이상 승리를 거머쥐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페어플레이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으로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된다.

비단 스포츠에서만 페어플레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페어플레이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초원 같은 곳에서는 통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주체인 사회에서는 그 무엇보다 우선이 돼야 한다.

권력이 불균등한 관계에서 경기를 펼칠 때는 페어플레이가 더 중요하다. 갑과 을의 관계, 심하게는 상대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다면 더욱 엄격한 공정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검찰 수사도 예외일 수 없다.

검찰이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공개 수사를 벌인 지 2개월이 됐다. 6월 10일 검찰은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잡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당시엔 ‘비자금 조성’이라고 수사 목표를 분명히 했다.

롯데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사무실은 물론,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들 신동빈 회장의 집무실·자택에 있는 장부와 컴퓨터 등을 압수했다.

검찰이 재계 서열 5위 그룹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당시 국내 경제계는 발칵 뒤집혔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폐쇄적인 순환출자와 일본 기업이 롯데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지분구조가 드러나면서 국민의 반(反)롯데 정서도 극에 달했다. 신 총괄회장의 손가락 경영, 신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당해도 싸다”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기업에 불·탈법이 있다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회사 자금의 개인 착복은 경제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다. 단죄해야 마땅하고, 이를 밝혀내는 검찰의 수사는 정당하다.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해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해 지금까지 밝혀낸 의혹은 △신 총괄회장의 서미경 씨에 대한 불법 증여 △롯데케미칼의 불법 세금 환급 △롯데홈쇼핑의 방송인허가 비리 등으로 집약된다. 의혹들을 살펴보면 신 총괄회장의 개인적인 불법 증여는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결과물인 듯하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이나 롯데홈쇼핑의 경우 여전히 의혹으로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롯데홈쇼핑 건은 강현구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태다. 2개월 가까이 조사했지만, 당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밝힌 신동빈 회장 중심의 비자금 조성과는 거리가 먼 결과들이다. ‘비자금’이라는 용어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에 잡히는 게 없자 무차별적으로 수사를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뚜렷한 결과물이 없자 ‘몰이사냥’ 수사를 한다는 말이다. 거창한 시작과 달리, 출구를 찾지 못해 허둥지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롯데그룹 수사가 진행되면서 롯데그룹은 경영과 투자가 모두 스톱된 상태다. 호텔롯데 상장과 해외 리조트 인수, 에탄크래커 합작사업을 위해 계획했던 미국 엑시올 인수도 물 건너갔다.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등 롯데그룹 상장 계열사 8곳의 시가총액은 검찰 수사 한 달 만에 1조5000억 원이 증발했다.

그룹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엄청난 피해다.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롯데그룹의 유·무형 자산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 롯데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가 현 경영진의 신뢰를 파기하고, 독자 노선에 나서는 파국도 초래할 수 있다. 엄정한 수사 원칙을 지켜야겠지만, ‘나올 때까지 파보자’는 식으로 시간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내사는 길게, 수사는 짧게’가 검찰이 할 수 있는 페어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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