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 출간, 현대인의 불안과 상처의 근원을 어루만지다

입력 2016-07-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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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써낸 첫 장편소설 ‘A씨에 관하여(박하 출판)’로 문단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녀 작가 안현서가 이번에는 지독한 생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끝내 인간의 선한 의지를 회복하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았다.

명민하고 조숙한 소녀 작가의 뭉클한 시선이 머무는 곳은 민모션증후군을 앓는 한 인물이다. 소설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박하 출판)’ 속 ‘서윤’은 유년 시절의 불운한 과거로 인해 감정 장애를 지니고 있다. 타인에게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민모션증후군에 시달리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봤자 배신당하고 말 거라는 심리적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별다른 열의 없이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졸업하고 처음 열었던 전시회에서 ‘그림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혹평을 듣는 그에게, ‘유안’은 구원과도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유안은 서윤의 감정을 읽어내 그림에 제목을 달아주고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어줌으로써 그의 신비로운 뮤즈가 되어준다. 하지만 유안 또한 잇따른 불행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이 밝혀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 더 컸던 그녀는 자살을 택한다. 서윤도 그런 유안을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꿈꾸는 구원의 모습은 서로 너무 달랐다. 서윤의 환생을 통해 재회하게 되는 둘의 관계는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또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저자는 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처럼 서윤과 유안의 잔혹한 인연을 천연덕스럽게 이어 붙인다.

서로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만남은 섬뜩한 악연이 되어 돌아오지만, 타인의 온전한 애정을 통해 자기애를 회복하고 나아가 증오하던 대상마저 용서하기에 이르는 눈물겨운 서사는 독자들에게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

올해로 18세가 된 저자는 이야기의 어느 조각 하나도 뺄 것이 없는 촘촘하고 영리한 구도는 물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부침을 반복하는 미묘한 인간 심리와 현대 사회 문제를 읽어내는 눈까지 깊어졌다. 투명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존재의 불안과 상처의 근원을 어루만지며, 형형색색의 씨줄과 날줄로 직조된 다층의 장치를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민모션증후군에는 모든 일에 확신을 잃어버린 이 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병리를 엿볼 수 있다. 안현서는 소설의 표면에 사회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이 시대 사람들의 유행병을 날카롭게 포착해 보인다. 순수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것, 완전한 것에 가까움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린 것, 미숙한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순수하기에 근원에 가닿는 시선을 여기서 발견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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