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14일 유치환-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생명파 시인

입력 2016-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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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그는 격동기의 역사적 현장(식민지 시대와 분단, 한국전쟁, 자유당 말기의 독재와 비리, 4·19혁명 등)에서 안전지대로 피신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선 책임감 높은 시인이었다.” 시인 문덕수는 ‘청마 유치환 평전’에서 시인 유치환(1908.7.14~1967.2.13)을 이렇게 평가했다.

유치환은 경남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저명한 극작가 유치진이 형이다. 통영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 도요야마(豊山)중학에서 4년간 유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동래고보를 졸업했다. 이어 그는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정지용 시인의 작품에서 크게 고무돼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품을 계속 써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내놓았다. 허무와 낭만에 천착한 대표작 ‘깃발’ 등 53편이 들어 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려고 만주로 옮겨가 당시의 절박한 체험을 담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의 시를 모은 게 제2 시집 ‘생명의 서(書)’다.

광복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교사로 일하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시집 ‘울릉도’, ‘청령일기’를 출판했다. 한국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했는데,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시집으로 펴냈다. 그 후에도 교육과 시작을 병행하면서 모두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출판했다.

그는 격조 높은 시심을 거침없이 표현했는데, 어떤 기교보다도 절절한 감동을 준다. ‘깃발’ ‘바위’와 같은 시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특히 서정주 등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평가된다. 1940년대 전반 만주 체류 때 쓴 시 4편과 산문 1편에 대해 친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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