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기불황에서 배울 점은
앞서간 나라에서 저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추적해 보는 일이다.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기회 창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균의 ‘도쿄 비즈니스 산책’(한빛비즈)은 현지에 체류하면서 일본인의 삶과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잘 씌어진 현장 리포트이다. 도대체 지난 25년간 일본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일본의 장기 불황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등을 차근차근 정리한 책이다. 장기 불황은 곧 기대 체감의 시대를 말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 “생활 속에서 만난 일본 사람들, 일을 하다 친해진 일본 친구들, 내가 직접 만난 일본인의 생활은 행복해 보였다. 돈이 많거나,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면서 느끼는 행복이 아니었다.”
우선 7개 장의 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추측해볼 수 있다. △작은 비즈니스가 살아남는다, △죽어가는 시장을 다시 보자, △도쿄의 맛집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달라진 관계를 짚다, △노인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 △좁은 땅에선 자동차가 돈이 된다, △일본의 땅값은 한국 부동산의 미래다.
장기 불황은 삶에 대한 기대와 씀씀이 모두에 대한 다이어트를 필요로 한다. 이런 환경에서 뜨는 비즈니스는 중고품 거래 사업이다. 일본 최대의 중고 명품 백화점인 고메효와 생활제품 중고품을 다루는 하드오프는 판매점과 매입 센터를 함께 운영하는데, 판매점보다 매입 센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장기 불황은 일본인의 구매 습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메효가 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불황에 시달리면서 일본인들은 자연스레 절약 의식이 강해졌다. 튼튼하기만 하다면 ‘남이 쓰던 물건인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새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가격은 절반에 불과하다면, 당연히 중고품을 산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도 앞으로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불황도 불황이지만 결혼관의 변화, 1인 가구의 증가 그리고 노년층의 증가 때문이다. 도심지에서 떨어져 있는 일본의 신도시들은 초기에 입주한 세대들이 노령 세대가 되면서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 세대가 신도시에 입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주민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본의 젊은 층은 교외의 쾌적함보다는 도심의 편리함과 화려함에 더 끌린다고 한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일본은 도시 개발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젊은 인구가 늘어가는 시절을 수십 년간 경험해온 사람들에게는 신도시의 몰락은 전혀 감이 와 닿지 않는 일이지만 일본의 경험은 우리의 앞날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게다가 교통망이 좋아지면서 일본의 중소도시들도 대도시를 향한 빨대 효과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교통망이 새롭게 구축되면서 처음의 예상과는 달리 모든 것이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에는 ‘셔터 거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의 상점가에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상가들이 속출하면서 생겨난 조어다. 찬찬히 읽으면서 내가 혹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맞을 것인가를 추론해 보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