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던 중 2010년, 일본 요코하마(橫浜) 항구의 중국인 거리에서 재미있는 내막을 발견했다. 관운장이 세계 최초로 복식부기(複式簿記·Double entry book-keeping)를 도입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피렌체 상인들이 처음 사용했고, 한국에서는 개성 상인들이 사용했다고도 한다.
복식부기는 상업 발달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 즉 자산과 부채의 변동뿐 아니라 자본의 변동, 게다가 비용, 수익의 발생 원인에 관한 것도 전부 기록 계산한다. 자산, 부채, 자본, 비용, 수익은 모두 계정에 분류되어 기록 계산되므로 한눈에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을 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 복식부기에 매료됐던 사람은 아산 정주영 회장이다. 아버지의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서울로 튄 그는 지금 동대문에 있던 경성 덕수부기학원에서 회계 공부를 한다. 6개월 코스였으나 부친께 체포(?)돼 창경궁 구경만 같이하고 고향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정 회장은 즐거웠다. 뒤에, 그 두 달간 복식부기를 배워서 인생의 진리를 터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복식부기는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원리를 정확히 담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복식부기를 모르고 사니까 희망과 절망의 우여곡절을 겪지만 정 회장은 달랐다. 다시 말해 인생살이에 즐겁고 좋은 것은 모든 것이 다 자산과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쓴 투자 비용인 차변(借邊)이고, 인생에서 출생환경이 힘들고 나쁜 것은 모두 자본이거나 부채,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질 수익은 모두 대변(貸邊)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터득한 정 회장은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살다가 즐거운 일이 생기고 행복한 일이 생겨도, 상대 계정인 미실현 불행이 대변에 자리 잡는 것을 알았고, 누구에게 돈을 떼여도 차변계정에 미실현 수익이 발생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실패나 좌절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의 거목이 되었다.
반면에 세상 이치와 천문, 지리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진 제갈공명은 사실 먹물쟁이에 불과했다. 그는 출사표를 쓰고 여섯 번 위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런데 군사를 내어 이기지 못하고 덧없이 오장원(五丈原)에서 몸이 먼저 죽었으니 참 슬픈 일이다. 나라도 망하게 하고….
하여튼 제갈공명이 다섯 번째 군사를 이끌고 나간 전투가 그 유명한 상방곡(上方谷)전투다. 이 전투에서 사마의를 화공(火攻)으로 몰살하려 하다가 실패한 후 그는 하늘을 탓한다.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로되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억지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뜻이다.
문제는 제갈공명은 죽는 순간까지도 세상 이치를 몰랐다는 것이다. 원래는 ‘謀事在天 成事在人 不可祈也’(모사재천 성사재인 불가기야)로, “일을 도모하는 것은 하늘이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은 사람이구나 기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의미다. 즉, 오장원에서 북두칠성에 기도하다가 죽은 제갈공명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는 끝까지 세상살이를 단식부기로, 힘으로 몰아붙이다가 실패했다. 인생은 단식부기가 아니라 복식부기. 지금 힘들어도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고, 아무리 즐거워 보여도 미래는 함부로 믿는 것이 아니다. 성사재인(成事在人)을 잊으면 안 된다. 한국인 간에 부자(富者)의 희망과 절망이 바뀌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독자 제위께서 희망을 갖고 공부하시기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