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월, 세월호의 하늘을 물들인 천사의 축제

입력 2016-05-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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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유리(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
우리는 어느새 물질적 생산과 소유가 절대적 목적인 삶에 함몰되어 있다. 그래서 태생적 축복인 정서적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스스로 망각하게 되었다. 점점 더 개인 속에 갇혀 노동의 피폐한 노예들이 되어 간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시간과 몸과 정신을 물질에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지점 지점에서 곧잘 길을 잃지만 다시 회복할 출구를 알지 못한다. 노래방에 가서 발악하듯 노래를 부르고, 고주망태가 되고, 한강을 미친 듯이 달리고, 휴일에 TV와 동거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상의 방법을 찾는 훈련과 습관은 없다.

지난 20일 통계청은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이 4시간 49분이라고 발표했다. 1999년 통계인 4시간 50분 이후 제자리인 데다가, 여가 시간의 69.9%가 TV 시청에 할애한 것으로 분석됐다. 여전히 정신과 영혼의 건강 유지는 뒷전인 것이다. 여가 활용에 만족한다는 국민은 26%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 한국인들처럼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하는 DNA를 지닌 민족도 없었다. 단군 이래 국가 차원의 공동체 의식인 제천행사를 혼신으로 즐겼고 풍물놀이, 마을굿, 마당극과 탈춤, 두레 등 종교적 기원과 노동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의 축제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 김열규 선생이 지칭한 ‘신명의 감염 현상’으로 탄생과 결혼, 노동, 심지어 장례까지도 집단적 노래와 춤의 난장판으로 승화시켜 온 민족이다. 한국인 특유의 ‘신명’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한 끝도 없는 외부 침략과 불합리한 신분제도에 시달리며 쌓인 한을 풀고 낙천성과 희망을 고수하려는 자연발생적이고 절박한 생존 정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지혜롭고 매력적인 집단 신명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적으로 거세당하고 민족 분단과 이데올로기 투쟁, 경제 고속 성장 압박으로 점점 마당을, 난장을, 광장을 잃고 개인의 벽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두운 1980년대를 넘기면서 신명과 축제의 후예들답게 축제들을 재창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지역민 화합, 지역 특성 홍보, 지역경제 기여 차원의 관광산업으로 치르다 보니 빈약한 기획의 가시적 이벤트에 자발적 시민 참여가 어려운 소모성 행사인 경우가 많다.

일상을 넘어 집단적 동질감으로 초월적 에너지에 접근하는 창조와 치유의 찰나적 체험이 축제의 본질이다. 일탈, 해방, 자유, 희열, 카타르시스, 유토피아…. 일상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는 아득하고 낯선 이 도발적 환상이 실현되는 것이 축제다.

최근 그런 축제 현장에 있었다. 잊지 못할 에너지 충전과 치유의 집단 신명의 체험이었다. 5월 5일, 마치 시간을 되돌려 어린이날 선물을 받듯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개막 공연인 ‘천사의 광장(Place des Anges)’을 만난 것이다.

광화문광장의 2.64배 규모라는 안산문화광장이 객석이고 하늘이 무대이고 광장의 빌딩들이 무대 세트였다. 순백의 천사들이 그 빌딩 사이를 와이어 한 줄에 의존해 공중 서커스하듯 오가며 급기야 광장 전체에서 순백의 깃털 눈이 분수처럼 치솟아 4만 명 이상이 모인 그 넓은 광장을 구름처럼 뒤덮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집단 신명과 치유의 카타르시스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거대한 제의식이 펼쳐졌다.

프랑스의 거리극단 컴퍼니 그라테 씨엘(Compagnie Gratte ciel)의 ‘천사의 광장’ 개막작 초청은 올해 안산거리극축제가 보여 준 신의 한 수였고, 축제의 본질과 문화의 사회적 역할의 최고 표본이었으며, 지자체 축제의 고착된 이미지를 극복했다. 안산거리극축제의 올해 슬로건이 ‘지금, 우리는 광장에 있다’인 것도 상징적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가슴이 아파 안산 쪽으로는 발걸음을 할 수 없다는 지인을 그 축제 현장에 끌고 가지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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