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눈에 비친 우리, 그 불편한 진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를 대단한 나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누군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 2’(책세상)는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나라의 진면목을 지나치다 할 정도로 솔직담백하게 드러낸다. 지나친 솔직함은 이따금 심적인 불편함을 가져다주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채색된 역사를 배워온 많은 사람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은 도움이 될 것이다. 허세 부리는 실수를 피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조국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은 나라를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중국에 한국은 어떤 나라로 받아들여져 왔을까. 일개 제후 국가였으면, 여러 번국 가운데 한 곳에 불과했다. 작가는 중국에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조선의 가장 큰 외교 문제는 이성계 아버지의 이름이 중국 정사에 잘못 기록되어 있었던 점이다. 1392년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다. 중국은 조선 왕의 청을 받고 나라 이름을 옛 이름을 좇아 조선이라 부르도록 허용한다. 오랫동안 조선은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지명으로 통했다. 흥미로운 일은 명나라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성계 아버지의 이름을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한 점이다. 명나라의 정사에 왕조를 창건한 사람의 아버지 이름이 잘못 기재된 것은 당시로서는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겠는가. 특히 이인임은 이성계의 정적으로, 이성계를 견제하고 그의 발목을 잡은 인물이었다. 조선은 1507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에 수차례에 걸쳐 왕의 아버지 이름을 고쳐 달라고 청원했다. 이 문제가 해결된 해는 1588년이다. 명나라에 파견 나간 유홍이라는 자가 수정된 ‘대명회전’을 갖고 의기양양하게 귀국하는 데 200년이나 걸렸다.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그야말로 그저 그런 외국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그들의 눈에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명나라에서 허용하는 우각 50부를 수매해 화약과 화포용 재료로 사용했다. 칼을 제작하는 일도 명나라가 재료를 허락하는 만큼만 받아서 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가르쳐 주는 진실은 대등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 무엇’을 상실하게 되면 언제나 변방의 한 제후국 정도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정체성을 다룬 이 책의 1장은 공자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공자의 참모습이라고 여긴 것이 착각의 소산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절대적 정체성이란 허상일 수 있다고 지목한다. 2장은 고려와 조선이 중국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3장은 일본의 한 정치가가 들려주는 패전 이후 일본 이야기, 4장은 한국전쟁 중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두가 다 과거의 이야기들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식이나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보기 드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