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5월 9일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자유가 평생 이념이었던 독일 고전주의 2대 문호

입력 2016-05-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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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1.10~1805.5.9)는 독일의 대표적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文豪)로 불린다. 실러는 평생 자유와 개혁을 위해 투쟁했다. 무엇보다 극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은 그는 연극무대를 단순히 카타르시스를 위한 장소로 보지 않고 예술을 통해 현실 정치를 개선하는 실천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그의 희곡들은 1848년 혁명 시기에 자유를 얻기 위한 독일인들의 투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1770~1790년 독일을 풍미했던 문학 운동으로, 한마디로 ‘질풍노도’라고 보면 된다. 기존의 권위적 관습이나 사회 체계 등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개인의 해방과 독자성을 표방했다. 실러는 이 ‘질풍노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이다.

최초의 희곡 ‘군도(群盜)’에서 이미 실러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정치적 억압과 폭정에 대항하는 도적떼의 활약을 통해 자유의 이념과 지향을 분명하게 그려낸다.

이런 자유에 대한 열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폭군형 영주 카를 오이겐의 눈에 들면서 싹튼 것이다. 오이겐은 인재를 육성한다며 목사가 되려던 실러를 반강제적으로 사관학교에 밀어 넣었다. 전제적 규율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실러는 권력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수시로 겪게 된다. 이 경험은 후에 대부분의 작품에 녹아들어 그가 말하려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소재가 된다. 그는 ‘피에스코’에서는 폭정에 대한 분노를, ‘간계와 사랑’에서는 귀족사회의 음모를 묘사해 독일의 현실을 준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실러는 ‘돈 카를로스’를 고비로 인간의 내적 자유에 관한 문제로 관심을 돌린다. ‘발렌슈타인’, ‘마리아 슈투아르트’, ‘메시나의 신부’ 등이 그런 희곡들이다. 김대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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