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말리부 9세대 모델이 한국에 상륙했다.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K5 등을 경쟁선상에 둔 만큼, 등급별로 갖가지 장점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지엠은 27일 국내 최초의 돔구장인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신차 공개 행사를 열고 쉐보레 신형 말리부를 선보였다. 새 모델은 1964년 이래 9세대로 거듭난 풀모델 체인지(완전변경)다. 신형 말리부가 다음달 본격 판매에 돌입하면 르노삼성 SM6, 현대차 쏘나타, 기아차 K5 등 중형 세단 간의 경쟁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국차에 안방을 빼앗긴 미국차의 반격= 말리부는 1964년 출시 이후 9세대를 이어왔다. 미국 패밀리카 시장에서는 포드(토러스)와 경쟁을 벌인 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던 가운데 1980년대 토요타와 혼다를 포함한 일본차, 1990년대에는 한국의 현대기아차에게 안방을 속속 내주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중형차 시장의 자존심으로 군림하고 있다.
GM은 지난해에도 미국 현지에서 일본차와 한국차에 고전했다. 현대기아차는 2015년 미국에서 역대 최다 판매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현대차는 전년대비 5.0% 증가한 76만여대를, 기아차는 무려 7.9%가 증가한 62만5000여대를 판매했다.
두 회사를 합친 판매 증가율은 6.25%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자동차시장이 5.7%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나름 선전한 수치다.
시장 점유율은 2014년(7.90%)보다 0.04% 포인트 상승한 7.94%를 기록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의 판매성장은 단순히 수치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지속되는 저유가 탓에 값싸고 연비 좋은 일본차와 한국차가 미국에서 힘든 싸움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할인 전략을 앞세워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기록했다.
반면 풀사이즈 SUV와 픽업 트럭을 앞세운 미국의 GM과 포드는 승승장구했다. 기름값이 싸진 만큼 대형 트럭을 찾는 고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픽업트럭이 다시 전성기를 향해 달리면서 GM과 포드가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방시장의 8%를 한국차에게 내준 GM은 9세대 말리부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그것도 현대기아차의 중심인 한국에 말리부를 전격 투입해 자존심 회복을 노리고 있다.
이날 한국지엠에 따르면 신형 말리부는 동급 최대 길이의 차체로 스포티한 디자인, 안락한 승차 공간을 갖췄다. 고강도 경량 차체와 최신형 터보 엔진의 탑재로 주행 성능이 향상됐다.
대표적 경쟁모델인 현대차 쏘나타를 대상으로 말리부의 상품성과 가치를 지상 비교하면 말리부의 만만찮은 상품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리부는 경쟁자인 LF쏘나타를 넘어설 수 있을까. 두 모델의 △연비 △가격 △성능 △차체 크기 △상품 가치 등을 비교해본다.
◇크기에서 쏘나타 압도…연비와 접근성 유리해= 9세대 말리부의 라인업은 단조롭다. 직분사 방식의 직렬 4기통 2.0엔진과 1.5엔진 두 가지로 짰다. 반면 각각 과급기인 터보를 기본으로 갖춰 남부럽지 않은 출력을 뽑아냈다.
터보는 배기가스의 힘으로 터빈을 돌리고, 터빈은 보다 많은 흡기를 엔진에 집어 넣게 된다. 흡기량이 많아질수록 높은 배기량의 효과를 낸다.
쏘나타는 1.6~2.4ℓ 엔진을 바탕으로 터보와 디젤, 자연흡기, 하이브리드 등 7가지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연비에서는 9세대 말리부가 쏘나타를 앞선다. 각각 엔트리 모델을 기준으로 말리부 1.5 터보의 정부공인 복합연비는 1리터당 13.0km다. 경쟁선상의 쏘나타 1.6 터보의 복합연비는 12.7km다.
둘째, 가격 면에서도 말리부의 접근성이 더 높다. 쏘나타 1.6 터보(2410만원)를 의식했는지, 말리부 1.5 터보는 이보다 100만원 저렴한 2310만원에서 시작한다. 다분히 마케팅적 전략이 스며든 가격 책정이다.
세번째로 신형 말리부는 차 크기에서 LF쏘나타를 앞선다. 신형 말리부는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4925×1855×1470mm다. 이는 현대차 LF쏘나타의 4855×1865×1475mm와 비교했을 때 너비와 높이는 비슷하고 길이는 무려 70mm나 길다.
휠베이스 역시 말리부가 더 여유롭다. 이는 실내 공간과 주행안정성(직진성)을 결정짓는 요소다. 앞바퀴 중심부터 뒷바퀴 중심까지의 거리를 의미하는 휠베이스는 신형 말리부가 2830mm로 윗급 임팔라(2835mm)와 맞먹는다. 이는 LF쏘나타(2805mm)는 물론 2000cc급 중형차 가운데 가장 길다.
넷째 출력도 LF쏘나타와 견줘 모자람이 없다. 2.0 터보를 기준으로 말리부는 최고출력 253마력과 최대토크 36.0kgㆍm를 낸다. 동급 LF쏘나타 터보는 최고출력 245마력을 내고 최대토크는 말리부 2.0T와 동일하다. 즉 순발력을 가름하는 토크는 두 모델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만 엔진 자체가 뿜어내는 출력은 말리부가 앞선다. 캐딜락 라인업에서 성능과 내구성을 인정받은 직분사 엔진들이다.
나아가 실제 체감가속도 말리부가 앞설 것으로 관측된다. 최대토크가 동일하지만 말리부는 초강력 강판 비율을 넉넉하게 유지하고도 공차중량 1470kg를 뽑아냈다. 동급 LF쏘나타 2.0 터보의 무게는 무려 1570kg에 달한다.
"그깟 작은 수치가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는 '그깟 작은 수치'에서 이기기 위해 수년 동안 밤잠을 줄이고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쏟아붓는다.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배경에는 분명 이유가 존재한다.
◇"그 돈주고 택시 사실려구요?"=쉐보레 말리부의 또다른 상품가치는 '택시리스(Taxiless)' 모델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내 중형차 시장 판매에서 택시는 적잖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전통적으로 쏘나타 택시를 출시해왔고 기아차 역시 K5를 앞세워 택시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르노삼성 역시 SM5 택시가 존재한다.
그러나 유독 쉐보레 말리부는 택시 모델의 출시를 거부하고 있다. GM의 전형적인 특징인 안전성을 앞세워 택시 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한국지엠은 단호하다. 과거 지엠대우 시절 토스카 택시를 출시한 이후 말리부는 택시 모델 출시가 없었다.
택시로 출시되느냐 마느냐는 사실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차량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다. 누구나 탈 수 있는 택시 모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