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경제현장을 가다] 조선소 근로자 ‘실업 공황’, 상인도 한숨… “선거에 눈길 가겠나”

입력 2016-04-07 10:11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③ ‘조선산업의 중심’ 거제 / 매주 하던 회식, 월단위로 줄여…‘富의 도시’는커녕 살기도 빠듯

▲지난달 31일 거제시 고현 시내에서 기호 2번 변광용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 인원들이 유세를 펼치고 있다. 기호 1번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과 기호 6번 무소속 이길종 후보의 플래카드가 걸린 곳 바로 밑에서 유세를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갈매기 날고 파도가 일고 동백꽃이 붉게 피었던, 그날 거제도 옥포항구에 이별에 우는 두 사람….”

거제 옥포항과 장승포항을 배경으로 한 가요 ‘항구의 연인’의 한 구절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옥포항과 장승포항은 연인들이 이별하는 슬픈 장소로 묘사된다. 그런데 조선업이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옥포항이 실의에 빠졌다. 이 가사처럼. 옥포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장평에 위치한 삼성중공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자 상인들의 수익도 반토막 났다. 4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부의 도시 거제는 이미 아스라한 옛이야기다. 4일에는 양 조선사가 거제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선정해 달라는 공동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4·13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먹고살기 바쁜 거제시 주민들에게 선거는 사치일 뿐이다.

◇거제시 경기 침체… 정치 관심 없다= 지난달 30일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터미널 앞에서 기호 2번 변광용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만났다. 목에 플래카드를 걸고 퇴근하는 시민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투표해 달라는 변 후보의 간절한 인사였다. “경기가 좋지 않아 시민들의 투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분 남짓 이야기했을까, 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인사할 시간이 많지 않다며 인터뷰를 서둘러 끝내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고현터미널에서 나와 고현 시내로 들어섰다. 거제시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명성과 달리 시내는 한적했다.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과 하교하는 중고교 학생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게 전부였다.

상인들과 한두 마디 말을 섞으니 불황이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고현 시내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춘옥(55)씨는 “5시부터 숙박할 수 있다”며 “경기가 좋을 때는 평일도 방이 꽉 찼는데 지금은 텅텅 비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선거 이야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난주부터 뽑아 달라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뽑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조선소 근처 번화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장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평 후문 먹자골목에 들어서니 예상했던 대로 작업복을 입은 인파로 북적였다. 이곳 손님의 95% 이상이 삼성중공업 직원들이다. 장평 상인들을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인들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장평에서 고깃집을 운영 중인 이제우(47)씨는 “지금 초저녁이라 저녁 먹고 가려는 사람들이 몰린 것”이라며 “10시만 되어도 손님이 다 빠진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손님들로 가득 찼는데 요즘엔 주말에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씀씀이가 줄어든 점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씨는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다 보니 회식이 크게 줄어든 것 같다. 매주 하던 회식을 월 1회로 줄여버리니 타격이 크다”며 “당장 먹고살기 바쁜데 선거는 무슨 선거, 누가 후보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소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의 경영난으로 거제 지역의 법인카드 사용률이 크게 둔화했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인카드 승인액은 2014년보다 26.5% 늘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시에선 지난해 법인카드 결제액이 211억원으로, 2014년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쳐 전국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기우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은 선거 외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대우조선해양 정규직은 1만4000명, 협력사 3만1000명,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정규직은 1만3000명, 협력사 2만4000명으로 총 8만1000명에 달한다.

거제시 전체 인구 25만명 중 지역 내 사업체 종사자가 12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경제활동인구의 70% 이상을 두 업체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2, 3차 협력업체 인력을 더하면 영향력은 더 향상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은 조선소 앞에서 출근과 퇴근 인사를 하면서 유세에 나선다. 그러나 반응은 썰렁하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의 하청업체로 팀을 꾸려 운영하는 최우영(가명ㆍ34) 반장은 “수주 잔량이 없어 대우조선해양에 있다가 삼성중공업으로 넘어왔다”며 “협력업체 하청업체 팀(10명 내외)은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데 요즘엔 3개월을 채우는 팀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실제로 3분의 1가량의 팀들이 1개월도 못 채우고 교체된다. 작업 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지만 수주 잔량이 없어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 반장은 “조선소 내에 투표소를 설치해도 투표율이 저조할 판인데 그것마저 무산됐다”며 “나도 이번에 투표를 안 할 생각이다.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근로자들에게 투표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거제시 투표율은 전국 꼴찌 수준이다. 경기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선거일이 임시공휴일인 특성도 있다. 공휴일에 일하면 휴일 특근 명목으로 일당이 평일의 2배나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6·4지방선거 당시 조선사업장에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들은 40%가 출근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경우 대다수 출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종 투표율은 54.2% 를 기록했다. 경남지역 59.8%, 전국 56.5%보다 낮은 수준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