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남녀공학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군대 가기 전까진 성적을 ‘깔아주기(?)’에 여학생들이 덕을 보곤 했었는데, 이젠 수강 신청한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으면 슬슬 빠져나간다고 한다. 여학생들과 경쟁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는 애당초 불리하다는 판단에서란다. 하기야 시험 성적만으로 입사를 결정하면 100% 여성을 뽑을 수밖에 없다던 신문사 편집국장의 탄식(!)을 들은 지도 이미 여러 해 됐다.
재임 중 여성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노라던 여성 대통령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선, 그토록 똑똑했고 성적도 좋았고 딱 부러지게 소신을 밝혔던 여성들이 매우 빠르게 자취를 감추어가는 현실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실제로 여성부 주관의 여성관리자패널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매우 낮은 직급에서부터 ‘유리천장’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성 고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 도·소매업, 금융업, 사업서비스업 등 4개 업종을 대상으로 여성 관리직 비율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업종 불문하고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우리네 성적표는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면, 355개 조사 대상 기업 중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가 1명도 없는 기업이 9.3%에 이른다. 이 수치는 그런대로 양호해 보이지만 차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가 전혀 없는 기업은 29.1%로 증가하고, 부장급 이상의 여성이 전무한 기업은 46.5%로 급증한다. 여성 관리자 비율의 평균이 12.3%라는 수준도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절대적으로 낮은 수치이지만, 이조차도 과장급 관리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여성 임원의 존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여성 임원 비율도 전체적으로는 5.2%라는 수치를 보이지만,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이 67.6%에 달한다는 사실을 덮어선 안 될 것이다. 여성 임원이 있다 해도 그중 16.6%는 단 한 명에 머물렀고 두 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둔 기업도 4.9%에 불과해 여성 임원은 그저 ‘구색을 맞추는 수준’의 상징적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과 남성의 직급별 승진율을 비교해본 데이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곧 경력 초기에 해당하는 사원-대리 단계에서는 여성의 승진율이 남성의 81% 수준으로 성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대리에서 과장, 과장에서 차장 등 중간관리자로 이동하는 단계에서는 여성 승진율이 남성 승진율의 각각 55%, 49%로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결국 ‘유리천장’은 대리급에서부터 약하게 시작되어 과장 및 차장급의 중간관리자를 거치면서 계속 심화됨으로써, 향후 고위직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여성인력풀 파이프라인에 동맥경화 현상이 존재함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재의 여성인력 관련 정책이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풀을 보다 확대하는 방안, 더불어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위시해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프로그램 정도에 집중되어 있음은 유감이다. 고학력 여성을 중심으로 한 번 빠져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L자형 취업 곡선을 그리고 있는 현실이나, 50대 이상 여성의 취업률이 OECD국가 중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실은 우리네 여성인력 관리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성인력 관련 정책도 기존의 양적 확대로부터 이제는 질적 관리로 패러다임 전환을 확실히 할 때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부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정책 결정권자의 결단과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의 발굴이 남아 있을 뿐. 박근혜 정부가 국정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여성 인재 10만명 양성의 의지를 다시 살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