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일 일본은행 정책결정회의, 15~16일 미국 FOMC 결과에도 촉각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초강력 부양 패키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ECB는 10일(현지시간)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인 레피(Refi)금리를 기존 0.05%에서 제로(0.0%)로 낮췄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적용되는 예금금리는 기존 마이너스(-)0.3%에서 -0.4%로 0.1%포인트 인하했다. 여기에 월간 자산매입 규모도 오는 4월부터 현행 600억 유로에서 800억 유로로 200억 유로 확대하기로 했다. 자산매입 대상에 투자적격등급의 비(非)금융기관 기업의 회사채도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실물경제에 대한 대출을 촉진하고자 4년 만기의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도 오는 6월부터 2차로 가동하기로 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기 부양과 디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사실상 경기 부양책을 총동원한 것이다.
ECB의 부양책 발표 자체는 일단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전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조치에 시장은 환호했다. 부양패키지 발표 직후 유럽증시의 스톡스600지수는 장중 2%까지 급등했고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도 1.6% 급락했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은 드라기 총재가 꺼내 든 부양카드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실망감과 우려를 나타냈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리가 앞으로 상당기간 매우 낮게 유지될 것”이라면서“오늘 우리의 조치가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에 충분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여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추가 완화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에 시장은 요동쳤다. 유럽증시는 2% 안팎의 내림세로 장을 마감했고 약세를 보이던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도 2% 급등했다. 이 여파에 미국증시도 혼조세로 마감했다.
일각에서는 드라기가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서겠다”던 그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완화책을 내놨다는 호평도 나왔지만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시장의 기대의 못 미치는 부양책 도입으로 실망감을 줬던 작년 12월처럼 드라기 총재가 이번에도 시장과의 대화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니콜라스 스피로 로렛 자문위원은 “그간 구두 개입으로 시장을 이끌었던 드라기 총재가 이번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그렉 후제시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일본과 스위스처럼 시중은행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예금금리 계층구조를 도입하는 동시에 추가 금리인하 여지를 남겼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완화정책 확대로 버블 발생 여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예상을 뛰어넘는 부양책 발표에 각국이 공조해서 경제를 개혁할 동기를 빼앗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이번 조치로 최악의 상황에 쓸 실탄이 남아있지 않게 됐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오는 14~15일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와 15~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쏠리게 됐다. 가이 르바스 재니몽고메리스콧의 채권 선임 전략가는 “드라기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기자회견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 연준이 이르면 오는 6월 금리인상 결정에 더 쉽게 접근할 여지를 줬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