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전기통산사업자가 고객 정보를 임의로 제공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10일 내려지면서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제출받은 통신자료는 2012년 787만여건, 2013년 957만여건, 2014년 1296만여건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그동안 포털업체나 이동통신업체는 수사기관 요청이 있으면 기계적으로 고객정보를 넘겨왔다. 그러다 이번 대법원 사건의 원고인 차모 씨가 2심에서 승소한 이후 포털업체들은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고객정보 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날 선고 직후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판결로 포털사이트들이 다시 정보를 제공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업체는 줄곧 수사기관에 협조해 왔기 때문에 포털사이트도 정보 제공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포털사이트업체들은 10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로부터 줄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한편 정보제공 여부를 심사할 책임도 면하게 됐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법원이나 검찰, 수사관서의 장 등이 '형의 집행이나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객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업체가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규정을 근거로 네이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이 규정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체가 정보를 제공할 지 여부를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50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며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포털사이트나 이동통신사들이 사안에 대한 경중을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수사기관의 요청을 모두 받아들여줬다는 점이 주된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판결을 통해 "오히려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해 이러한 심사가 행해지면 그 과정에서 혐의사실 누설이나 별도의 사생활 침해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며 1심 결론이 맞다고 봤다.
소송을 진행한 참여연대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다른 대법원 계류 사건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참여연대 측이 언급한 사건은 지난해 통신가입자 서모 씨 등 3명이 이동통신사 3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건이다.
서울고법 민사 1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업체는 수사기관에 제공한 정보 내역을 고객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업체는 고객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제공됐는지 여부는 물론 어떤 내용이 전달됐는지까지 공개할 의무를 진다. 이 사건은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에 계류돼 있다.
이날 박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최근 통과된 '테러방지법'과 연계될 경우 수사기관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이통사나 포털사이트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 또는 해지 일자 등 6개 항목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통신 내역은 물론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 지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