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이례적 ‘재난’ 앞에 무릎꿇은 국내외 공항들

입력 2016-02-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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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유미 산업2부 차장

지난달 20~23일 중국 충칭(重慶)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날 사달이 났다. 23일 새벽 충칭에는 2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평소에 눈이라곤 보지 못한 충칭공항 관계자들은 몹시 당황했고 우왕좌왕했다.

오전 10시 25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기자단 30여 명은 오전 8시 공항에 도착해서야 그 심각성을 실감했다. ‘눈’이 내릴 경우 공항에서 대처해야 할 그 어떤 매뉴얼도 없었다. 그래서 그 흔한 안내 방송도 없었다.

2~3시간이 지나서야 “오후 4시까지 공항을 통제한다”는 힘 빠지는 통보만 했다. 기자단은 하염없이 활주로를 바라보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런데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비행기는 하나 둘씩 늘어나 주기장이 꽉 찼지만, 수시간이 지나도 활주로에 쌓인 눈은 치워지지 않는 등 제설작업이 너무나도 더뎠다. 급기야 충칭공항에 착륙해야 하는 비행기들은 하늘에서 방황하다 기름이 떨어져 결국 인근 청두(成都)공항에 급히 내려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설기가 고작 한 대뿐이었다. 정말 눈에 대한 그 어떤 대비책이 없었던 것이다.

오후 4시가 돼도 공항은 여전히 우왕좌왕. 결국 오후 6시가 돼서야 해당 항공사(에어차이나)는 “오늘 비행 취소”라는 힘 빠지는 결정을 내렸다. 에어차이나 역시 10시간 동안 그 어떤 안내방송 하나 없었고, 안내 직원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10시간 동안 공항에서 영화 ‘터미널’을 찍어야 했다. 그저 난민이었다.

다음 날 역시 이륙은 지연됐고, 게이트는 물론 이륙 순서가 수시로 바뀌면서 승객들끼리 몸싸움까지 벌이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었다. 속으로 ‘중국은 어쩔 수 없어’라고 비웃으며 공항 대기 4시간 만에 감격스러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비하하며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치솟았던 것도 잠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또다시 얼굴을 붉혀야 했다. 전 세계가 한파로 꽁꽁 얼어붙으며 32년 만에 폭설이 내린 제주도에서도 충칭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된 제주공항 역시 예상치 못한 대형 재난에 대한 체계적 매뉴얼 부재로 1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난민이 됐다. 제설 차량이 4대로, 충칭공항보다 나은 듯 보였지만, 수만 톤에 달하는 눈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대 1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공항에서 대기하는 상황에서 제주공항은 고작 400여 개가 전부인 모포, 깔개는 꺼내지도 못했다. 전산처리 없이 대기표를 나눠 준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대처도 엉망이었다. 40여 시간 동안 폐쇄된 제주공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충칭과 제주공항 모두 ‘이례적’ 날씨라는 이유를 내세우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대처였다. 특히 지난해 사상 최고인 2600만 명의 승객이 다녀간 제주공항에 붙은 ‘국내 제2의 공항’이라는 별칭도 민망하다.

공항 마비 대처, 유관기관 협조, 이재민 구호, 항공사와 협조 체계 등 기존에 미비했던 내용들을 면밀히 검토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시급하다. 같은 상황이 또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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