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광규, 등단 40주년 시집 출간 "'읽기 쉬운 시' 쓰기 쉽지 않아요”

입력 2016-01-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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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만난 김광규 시인이 등단 40주년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정수천 기자 int1000@)

“그대로 두고 보기로 했다/천천히 눈이 녹은 그 자리에서/연녹색 새싹들이 돋아날 때까지/그냥 기다리기로 했다”(설날 내린 눈 중)

등단 40주년을 맞아 11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문학과 지성사)을 펴낸 김광규 시인은 읽기 쉽게 시를 쓴다. 담담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 한 편이 술술 읽힌다. 대부분 한 연으로 구성된 짧은 시는 읽는 이의 마음을 길게 흔든다.

“밤새도록 오른손이 아파서/엄지손가락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설 상 차리는 데 오래 걸렸어요/섣달그믐날 시작해서/설날 오후에 떡국을 올리게 되었으니/한 해가 걸렸네요/엄마 그래도 괜찮지?”(오른손이 아픈 날 중)

계속 읽다 보면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의미층’이 드러난다. ‘손이 아픈가 보다’ 싶다가도 다시 보면 ‘아픈 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시를 완성하기까지 김광규 시인은 관찰과 성찰을 계속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그랜드 힐튼 호텔을 좀 봐요. 천장이 높고 잘 꾸며져 있잖아요. 분수대에서는 물소리도 잔잔하게 들리고. 주변을 관찰할 줄 알아야 시를 쓸 수 읽고, 시를 읽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김광규 시인은 특히 ‘새와 함께 보낸 하루’가 시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새와 함께 보낸 하루’라는 작품에 시인의 삶이 담겨있어요. ‘하루’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새들을 상당히 오랫동안 지켜봤거든요”라며 “한참을 관찰하다가 생각을 정리해서 한 구절 쓰고. 그렇게 오래 고민해서 시를 하나 써내는 거에요. 그런 게 별거 아닌데 오래 걸려요”라고 설명했다.

김광규 시인은 시상이 떠오르면 휴지든, 이면지든 일단 옮겨 적는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 넣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보고 시를 다듬는다. 글이 안 풀리면 몇 년 동안 시를 완성하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에 안 들어 찢어 버린 시도 수십 편이다. 시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춰도 여러 번 시를 고쳐 쓴다. 보통 독자들이 시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을 때까지 20번 이상 고친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행갈이를 신경 써서 시의 이미지, 소리에 어울리도록 배치한다. 여러 개의 의미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민, 또 고민한다. 그는 “내 시처럼 쓰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따라 써보려는 시인들도 쉽게 쓸 수 없는 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시에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특징도 있다. 이번 시집에는 산책로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친 모습과 유서를 쓰던 내용 등 그의 삶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김광규 시인은 “내 시는 나의 현실 생활 체험에서 나온 거에요. 그렇다고 시에 나온 나. 화자 시적 자아가 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죠”라며 “체험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바로 ‘김광규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유추할 수도 있는 것이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 ‘나’가 소설가 자신이 아니듯이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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