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옷깃은 끌어안아야 스친다

입력 2015-12-3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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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편집부 교열팀 차장

병신년(丙申年)의 태양이 밝았다. 천간(天干)의 병(丙)은 붉은색을, 지지(地支)의 신(申)은 원숭이를 상징한다. 즉 올해는 ‘붉은 원숭이’ 해다. 원숭이는 영리하고 사교성이 뛰어난 동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잔꾀, 미성숙의 이미지도 갖고 있으므로 그 어느 해보다 정진(精進)해야겠다.

새해 첫날을 맞을 때마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즐겁고 특별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조선 중기의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을 꼽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삶을 누리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책에서는 생각과 상상력, 꿈까지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리고 소중한 이들과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이다. 그래서 신년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날씨를 살폈다. 큰 추위는 없겠으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다니라는 예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옷깃을 여미다’라는 표현은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옷깃을 여미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가지런하게 해 자세를 바로잡다’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한마디로 ‘단정히 하다’라는 의미다. 찬바람을 막으려면 옷깃을 세워야 한다.

옷과 관련해 흔히 쓰는 ‘소맷깃’은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소매+깃’의 ‘소맷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깃’은 ‘옷깃’의 준말로,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이다. 위치상으로 봤을 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만들려면 껴안아야 한다. 옷자락과 달리 옷깃은 쉽게 스칠 수 없다. 옷소매에서 손이 나올 수 있게 뚫려 있는 끝의 구석 부분은 ‘소맷귀’다. 소매와 귀가 만나 이뤄진 말로, ‘귀’는 두루마기 또는 저고리의 섶 끝부분, 주머니의 양쪽 끝부분을 뜻한다.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정비석, 산정무한), “그녀는 사과를 소맷귀로 슥슥 문질러 깨물어 먹었다”처럼 쓸 수 있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하나만 기억하자. 목 부분에는 옷깃이, 팔 부분에는 소맷귀가 있다.

“웃음과 기쁨이 충만한 한 해 되세요” “건강하세요”….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덕담이다. 2016년에는 모든 이가 바라는 바를 이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기자는 새해 아침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아름다운 인연이 많은 한 해가 되기를. 인간의 행복은 인연에서 출발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잘 이어갈 때 인생은 그 가치를 더할 것이다.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다. 소중한 인연은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귀한 인연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자리를 빌려 인사를 드린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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