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만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아빠 성동일의 직업은 은행원입니다. 한일은행에서 직원들 비리를 캐고 있죠. 만년대리 월급으로 다섯 식구 살림에 친구 보증 빚까지 갚는 성실한 가장입니다. 아! 얼마 전 빚지고 도망간 홍식이가 돌아와 월급 차압은 끝났죠. 그 덕에 첫째 딸 보라는 판사 꿈을 다시 꾸고 있고요.
공감보다 호기심으로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는 10~20대 시청자들이라면 한일은행이 생소할 겁니다. 달력 아래 진하게 박혀 있는 카네이션 모양의 로고도 낯설겠죠.
사실 한일은행은 지금도 영업 중입니다. 우리은행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말이죠. 변천사의 시작점은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첫 사명은 대한천일은행이었습니다. 서울 상인들을 주축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죠.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이 2대 은행장이라고 하네요. 120년 가까운 역사의 깊이가 느껴지시나요?
그 후 대한천일은행은 경술국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냅니다. 1910년 일제 탄압 때문에 사명에서 ‘대한’이란 이름을 지워야 했고요.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자마자 북한군 폭격으로 종로와 인천지점을 잃었습니다. 상업은행과 함께 대한민국 금융을 책임지던 신탁ㆍ상공ㆍ저축ㆍ조흥은행도 유탄을 피할 순 없었죠.
근대적 개념의 은행이 설립된 건 1950년대 중반입니다. 1954년 새로운 은행법이 시행되면서부터죠. 당시 은행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인수ㆍ합병(M&A)에 나섰습니다. 1956년 신탁은행과 상공은행이 합병해 한국흥업은행(1960년 한일은행으로 사명 변경)으로 재탄생했고, 1958년에는 한국저축은행이 제일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죠.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세워진 서울은행은 1959년 첫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금융을 쥐락펴락하던 ‘조상제한서’(조흥ㆍ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란 단어가 생긴 배경입니다.
이후 상업은행은 1999년 한일은행과 합병하면서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2001년엔 평화은행까지 품에 안으면서 우리은행으로 간판을 새로 달았죠. 2002년 서울은행이 하나은행과 손잡고, 2005년 조흥은행이 신한은행과 합병하면서 ‘조상제한서’는 금융위기 1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적극적인 M&A에 금융 경쟁력은 크게 높아졌지만 수십만 은행원들은 그때마다 칼바람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곳곳에서 ‘조기’(조기 퇴직)와 ‘명태’(명예퇴직)가 쏟아졌죠. 극 중이긴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을 즐겨 보는 40~50대 은행원들이 성동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2015년 은행원들은 그때와 똑같은 걱정을 안고 삽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라이벌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금융권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5만1000개나 된다고 합니다. 전 업종 가운데 가장 많이 줄었습니다. SC제일은행은 전 직원의 20%에 달하는 961명을 내보냈고요. KB국민은행도 상반기 1122명을 감원했습니다. 지난 9월 출범한 KEB하나은행도 4년 만에 특별퇴직 신청을 받고 있죠.
지난 9월 알고 지내던 한 팀장이 희망퇴직을 해 ○○은행을 떠났습니다. 송별회 끝에 “이제 편하게 쉬세요”라고 작별인사를 했더니 “기술도 없는데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더군요. 미생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보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퇴직금 많이 받았으니 된 것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매정할 정도로 말입니다.
‘응답하라 1988’ 속 동일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으로 온다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반지하 전세방에 살면서 다섯 식구 생계비까지 책임지려면 아주 버거울 겁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딸의 고시 뒷바라지는 엄두도 못 내겠죠. 1988년의 동일도, 2015년의 팀장님도 은행원으로 살아가는 게 참 힘들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