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기축통화] 스페인, 미국 이어 중국…국력에 좌우된 기축통화의 역사

입력 2015-12-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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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와 위안화. 사진=신화뉴시스

국제 무대에서 무역이나 금융거래에 기본이 되는 통화인 ‘기축통화’는 그간 국력과 세계 경제패권의 흐름에 따라 향방을 달리했다.  

지난 500년간 세계 패권은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미국 등으로 이어졌다. 경제패권의 상징인 기축통화도 이 패권의 움직임에 따라 국적을 달리했다.

15세기 경제 패권은 스페인에 있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해상 무역권을 장악한 덕분이었다. 당시 스페인에서 주조된 은화 ‘페소 데 오초’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경제 패권은 17세기 초반 네덜란드로 넘어가게 된다. 1588년 영국 해군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완파하면서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무역해상권이 흔들렸다. 양국이 전쟁을 벌이며 국력을 소진하는 사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배를 확대했던 네덜란드가 급부상한 것이다. 이에 네덜란드 ‘길더화’가 이 시기에 국제통화 노릇을 했다.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파운드화’가 길더화 자리를 대신했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파운드화를 교역 시 결제 용도로 사용했다. 19세기 후반에 파운드화가 세계 교역 결제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파운드화는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 달러화에 패권을 넘겨주게 됐다. 특히 세계 2차대전을 겪으면서 경제 패권은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1940년까지 해외 각국이 보유한 파운드의 양은 달러의 두 배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파운드는 핵심 화폐 역할을 지켰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위축되면서 파운드화도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게 됐다. 1944년 44개국은 미국 뉴헴프셔주 브레턴 우즈에 모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금환본위제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금 1온스는 미국 35달러에 고정됐으며 이듬해 국제적으로 달러화의 사용량이 파운드화를 앞섰다.

이후 미국 달러화는 70년간 기축통화의 자리를 지켰다. 이 기간에 다른 국가의 도전도 있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의 엔화가 국제통화 지위에 도전했으나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지며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빠졌다. 유럽연합(EU)이 탄생하며 유로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역시 저성장에 빠졌다.

최근 달러의 지위에 도전에 나선 통화가 바로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규모 2위로 올라선 중국의 위안화다. 중국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 편입을 확정 지으면서 자국 통화인 위안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정부가 외화보유액 중 위안화 자산을 매년 1%씩 늘릴 경우 향후 5년간 6000억 달러가 유입될 위안화에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세계 역사에서 100년을 주기로 세계 패권이 움직이고 이에 따라 기축통화의 국적도 뒤바뀌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안화가 이번 SDR 편입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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