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 말은 오언시에 능했던 당 시인 유장경(劉長卿)의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에 나온다. 눈을 만나 부용산에서 묵으며 쓴 시다. “날 저물어 푸른 산은 먼데/하늘은 차고 오막살이집 가난하다/ 사립문 밖 개 짖는 소리/눈보라 치는 이 밤 누가 돌아오나 보다.”[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수없이 많이 그림으로 그려진 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북(崔北·1712~1786?)의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 유명하다.
최북은 호가 기암(箕庵) 성재(星齋)였지만 양반들이 신분이 낮은 자신을 “어이 거기!”라고 부르는 데 항의하는 뜻에서 거기재(居其齋)라는 호를 지었다. 그림을 그려 먹고산다고 호생관(毫生館)이라는 호도 썼다.
추사 김정희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거처를 백옥이라고 써 보낸 편지가 있다. “근래엔 또 어떤 식으로 소견(消遣)하시는가. 차는 익고 향은 훈훈해 족히 추위를 바꿔놓을 만한데, 묵금사(墨金社) 안에서 고아주(羔兒酒)를 얕게 마시며 역시 생각이 나 같은 가난뱅이 백옥에도 미치곤 하는가. 이곳은 바깥사람을 향해 말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네. 벼룻물이 얼음 잡히려 하여 이만 쓰네.”[邇來又作何等消遣法 茶熟香溫 足以煥寒 墨金社中淺斟恙兒 亦有念及於白屋吒吒中否 此中無足爲外人道也 硯濤欲氷 不儩] 맨 끝의 儩(사)는 다하다, 떨어지다, 바닥나다, 그런 뜻의 글자다.
두보의 시 ‘감림(甘林)’에도 백옥이 나온다. “고관 집이 옳다고 자랑하지 말며 이 백옥은 그르다고 더럽게 여기지 말라.”[勿矜朱門是 陋此白屋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