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상 유보 결정으로 공포마케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공포마케팅의 중심인물은 ‘화폐의 몰락(The Death of Money)’과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저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짐 리커즈(Jim Rickards). 그는 금리 인상 시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기 때문에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고, 금년은 물론 내년에도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경로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17조4000억 달러, 공공부채(Unfunded Liabilities, 연금, 의료보험, 학자금 대출, 연방주택자금 등)는 127조 달러이니 금리를 0.25%만 올려도 이자부담이 연 3600억달러 이상 늘어나게 된다는 것.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0%에 해당하고 미국의 연간 GDP 증가분과 맞먹는 규모다. 여기에 기업과 가계 부채를 감안하면 금리 인상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 뿐 아니라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들도 부채 문제가 심각한데다 세계 경기를 선도했던 중국 마저도 상황이 좋지 않으니 금리 인상은 곧바로 대공황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공포는 ‘팩트(fact)’가 가미되면 한층 더 커진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연준이 양적완화(QE)로 푼 금액은 3조1000억 달러. 6000억 달러에 불과했던 통화량이 3조7000억 달러로 5배 이상 증가했다. 1950~60년대에는 1달러를 풀면 2.41달러의 경제성장효과가 있었던 것이 1970~80년대에는 0.41달러로, 그리고 요즘에는 0.03달러로 급락했다. 통화의 유통속도가 1929년 대공황 때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고, 돈을 더 풀면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 리커즈의 지적이다. 여기에 일본,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려 화폐전쟁의 우려는 높아지는 등 버둥거리다 모두 경기 침체와 부채의 늪에 침몰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한 때 미국의 주가가 6개월 내에 70% 폭락하고 25년간의 대공황을 맞게 될 것이란 저주에 가까운 예측을 하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아직 그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전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는데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은 순전히 버블이고 버블이 사라지는 순간 폭락하게 된다는 아주 단순한 계산이다.
그는 주요국의 양적완화와 금리인하 조치가 한계에 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IMF(국제통화기금)가 나서게 될 것이라면서 국제금융체제의 변화까지 예측했다. IMF가 국제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대량(조 단위) 발행하여 주요국에 스왑방식으로 제공하면서 각국은 통화량 확대와 물가상승 책임을 면하게 되는 묘책이 강구되고 있다는 것. 미달러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및 엔화 등 4개 통화 바스켓에 중국 위안화를 추가하여 잘 합의하면 화폐전쟁도 막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일정도 그럴싸하다. 우선 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워싱턴에서 만나 G2의 입장을 정리하고, 10월 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IMF 연례회의와 11월에 있을 IMF 집행이사회 때 큰 틀을 확정한 후 내년 9월 30일 뉴SDR체제를 출범시키는 일정이다. 지난 1985년 9월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여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고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낮추기로 했던 플라자합의가 있은지 31년만에 새로운 합의 체제가 탄생한다는 이야기다.
그가 예상하는 뉴SDR체제의 본질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각국의 재정적자와 부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 편법이긴 하지만 세계 경제가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러니 개인들은 인플레이션과 버블붕괴에 대비해 자산의 가치를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금, 귀금속, 골동품, 예술품, 농지, 원자재 등과 같은 실물이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이 결론이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소설 같은 주장이라면서 쓴웃음을 짓지만 개인들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버블붕괴라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긴 했지만 안전자산에 투자하라니 터무니없는 말로는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니 픽션인지 팩션인지 두고 볼 일이다.
남진우 뉴욕 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