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동전 한 닢

입력 2015-09-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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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늙은 거지가 은전 한 닢을 손에 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혹시 이것이 못 쓰는 돈은 아닌지 두 군데 은행에 들러 정말 쓸 수 있는지, 은으로 만든 돈이 맞는지 묻는다. 사람들은 첫눈에 어디서 훔쳤느냐고 호통친다.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훔친 것도,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은화를 줍니까.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으로 몇 닢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 하여 겨우 이 은화 한 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진다 해도 쓰지도 못할 거, 왜 그렇게까지 애써 모았느냐고 묻자 늙은 거지는 뺨에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피천득 선생의 ‘은전 한닢’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무얼 가지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러나 사람 욕심에도 이토록 슬프고 아름다운 순수가 있다. 나도 한때 단지 갖고만 싶어서 저렇게 동전 몇 닢을 모은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우리에게 10원이면 참 큰돈이었다. 1원짜리와 5원짜리도 종이돈이 있던 시절, 10원짜리 종이돈엔 첨성대가 그려져 있었다. 그거 하나면 공책과 연필도 사고 그래도 돈이 남아 눈깔사탕도 한 주먹 살 수 있었다. 그런 종이돈 대신 10원짜리 동전이 처음 나온 게 1966년, 내 나이 열 살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세상에 막 나온,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이 너무도 예뻐 보이고, 또 가지고 싶었다. 다음해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10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모을 수 있었다. 지난해 운동회와 가을소풍,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은 것이었다. 1원 2원 모아서 10원짜리로 바꾼 게 아니라 그냥 10원씩 받아서 모았다.

새해가 되어 학기 초와 봄 소풍 때 두 개 더 모아 일곱 개를 만들었다. 그 돈을 내가 만든 찰흙 저금통 안에 넣어두었다. 일부러 저금통을 깨지 않으면 누구도 열 수 없었고 돈을 꺼내 갈 수도 없었다. 찰흙 저금통을 귀 옆에 대고 흔들면 어린 마음에도 늘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동전과 마른 찰흙이 부딪쳐 그냥 투덕투덕하는 소리가 났지만 어쩌다 동전끼리 허공에 부딪쳐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 속의 동전 두 닢이 마치 내 눈앞에서 부딪치듯 기분이 좋았다.

그걸 형제들에게도 흔들어 보이고,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자랑처럼 흔들어 보였다. 그걸로 무얼 할 거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지고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집안에는 그게 욕심난다고 손댈 사람이 없었다. 욕심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도 저금통을 따로 보관하기보다 책상 위에 등잔처럼 놓아두었다. 형제들도 누가 놀러오면 그걸 흔들어 보이며 자랑해 어떤 때는 그게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형제들 공동의 물건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나중에 그 돈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이 내 것이어서 마냥 좋았던 기억만 난다.

어제 길에서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다.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속에 10원짜리 동전이 너무 작아졌거나 내가 그때로부터 멀리 걸어온 것이다. 그래도 어제 주운 10원짜리 동전은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반짝이는 기억 하나를 되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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