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샤갈의 마을과 나의 마을

입력 2015-08-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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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소설가)

내가 어린 날 인상 깊게 보았던 세계 명화는 밀레의 ‘만종’과 ‘이삭을 줍는 여인들’이었다. 달력에서 오려낸 그 그림은 우리 마을 4H클럽 회관에 걸려 있었다. 4H회관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며칠마다 한 번씩 모여 마을의 발전과 자신들의 할 일에 대해 회의를 했다. 때로 마을 청년들은 군청이나 강릉 시내의 공설 운동장 같은 데에 나가 다른 마을의 4H회원들과 가마니 짜기, 맷방석 빨리 엮기, 볏가마니를 등에 짊어지고 빨리 달리기와 같은 경진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 시절 중학교에 다니던 형의 미술책에서 ‘나와 마을’이라는 샤갈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그것은 밀레의 ‘만종’과 ‘이삭을 줍는 여인들’과는 다른 원색의 밝은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그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림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일테면 이런 식이었다.

우리 마을엔 교회가 없는데, 샤갈의 마을엔 교회가 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내 교회에서 아주머니들에게 줄 빨랫비누나 아이들에게 줄 사탕을 들고 우리 마을로 전도를 나오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냥 교회에 다니는 마을 사람일까.

우리 마을은 초가집 절반 기와집 절반인데 그림 속엔 교회 옆으로 비슷한 모양으로 지은 다섯 채의 삼각 지붕 집이 있다. 동네 공터에 남자와 여자가 서 있는데, 남자는 쟁기를 어깨에 메고 걸어간다. 남자가 어깨에 메고 있는 쟁기는 괭이일까, 쇠스랑일까, 아니면 도리깨 같은 것일까. 괭이나 쇠스랑이라고 보기엔 쟁기 날이 너무 길다. 물으면 형은 모른다고 했고, 언제나 아버지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유럽의 낫이라고 했다.

“낫이 이렇게 커요?”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낫은 꼴을 베는 낫이든 벼를 베는 낫이든, 아니면 나무를 툭툭 자르는 무쇠 낫이든 저만큼 손잡이가 길지도 않고, 낫날 역시 도리깨 날개만 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풀을 앉아서 베지만, 저 나라에서는 서서 낫을 이렇게 휘휘 휘두르면서 풀을 벤단다. 그래서 낫자루가 우리나라 괭이자루보다 길고 낫날도 거의 도리깨만 하단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림 속의 사내가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은 영락없는 낫이었다. 나는 저 큰 낫으로 뻣뻣하게 선 채로 갈퀴질을 하듯 풀을 베는 서양 농부를 떠올려 보았다. 왜 그들은 우리처럼 앉아서 풀을 베지 못하는 것일까. 서양 사람들은 책상다리로 앉을 수 없다더니 그래서 풀도 서서 베는 것일까.

우리 동네엔 젖소가 없는데 그림 속엔 소젖을 짜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젖을 짜는 여자의 그림이 또 이상하다. 소젖을 짜자면 두 손이 모두 소젖에 가 있어야 하는데, 그림 속의 여자는 왼손은 소젖에 가 있고, 오른손은 자기의 등을 만지고 있다. 마치 젖을 짜다가 등이 가려워 한 손으로는 젖을 짜고 한 손으로는 등을 긁는 것 같다.

그림 속의 소는 사람처럼 알록달록한 목걸이를 했지만, 우리 집 소의 턱밑엔 놋쇠로 만든 작은 워낭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소가 고개를 휘두를 때마다 딸랑딸랑 워낭소리가 났다. 산속에 풀어놓고 풀을 뜯길 때, 그 소리를 듣고 소가 있는 곳을 짐작한다.

아, 그래서 세상은 넓구나. 나는 지금도 그 그림을 보면 내 나이 열 살 때의 고향 마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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