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 욕설 "이렇게 고소하라"…'모욕죄 매뉴얼'까지

입력 2015-08-1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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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중 채팅창에서 주고받은 욕설로 경찰서에 가는 일이 잦아지다 못해 아예 인터넷에 형사고소 요령을 안내하는 일종의 '매뉴얼'까지 돌고 있다.

가뜩이나 사소한 모욕죄 관련 사건으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경찰은 최근 이런 매뉴얼을 참고로 한 모욕죄 고소 사건이 몰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

◇ "게임 중 욕설 이렇게 고소해요!"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을 다루는 한 유명 웹사이트에는 지난달 중순께 게임이나 인터넷상에서 채팅하다 지속적으로 욕설을 당하고서 모욕죄로 고소한 경험을 정리한 후기가 올라와 인기를 끌고 있다.

글을 쓴 누리꾼은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드러난 '특정성'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공연성'이 성립해야 한다는 법 이론부터 제시한다. 그러면서 익명의 닉네임(별명)을 쓰는 온라인 게임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모욕죄 성립 요건 중 특정성을 갖추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 누리꾼은 채팅에서 자신에 대해 욕설이 나오기 시작하면 자신이 사는 곳과 이름, 전화번호를 채팅창에 쳐서 신분을 밝히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특정성이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게임 채팅방에는 보통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진 욕설을 제3자가 볼 수 있어 공연성도 성립한다고 이 누리꾼은 덧붙였다.

신고 방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있다.

우선 이 누리꾼은 "경찰은 피해자 편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경찰이 아니라 거주지역 담당 검찰청의 사이버 민원을 통해 신고하라"고 조언한다.

경찰에서는 인터넷상 모욕죄 고소가 들어오면 각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이 고소장을 받아 사건을 경찰에 맡기면 어쩔 수 없이 수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게시글에는 욕설한 상대방이 확인되면 합의하는 요령, 합의하지 않고 소액 민사소송을 내는 방법까지 설명돼 있다.

◇ 경찰 "모욕죄, 경찰서에 온다고 능사는 아니에요"

실제로 일선 경찰서에는 최근 이 누리꾼이 조언한 내용과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 중 욕설에 대응하고서 상대를 고소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관계자는 "국민 신문고나 사이버경찰청 등을 통한 것까지 포함해 이런 사건이 매일 여러 건 들어온다"며 "우리가 보기에 특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각하한 사건이 검찰을 거쳐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고소인이 채팅창에 어떤 개인정보를 얼마나 노출했는지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당사자가 특정됐다고 보기에 부족해 각하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어 무조건 수사를 시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경찰관은 "누구인지 특정할 만큼의 정보를 노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어느 아파트에 사는 누구' 정도라면 특정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수사 착수 여부는 사례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모욕죄 고소 사건은 가해자가 사과하거나 합의금을 주면 쉽게 취하되기도 한다. 꼭,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이 느낀 모욕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보상을 받고 끝내려는 이가 많으니 경찰로서는 맥빠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탓에 모욕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일부 법학계의 의견에 동의하는 경찰관도 적지 않다. 게임상의 욕설이 심각하긴 하나 이는 문화적 성숙도의 문제이지 국가가 처벌할 대상은 아니라는 견해다.

2013년 헌법재판소가 모욕죄를 합헌 결정했을 때 재판관 8명 중 3명은 "사이버 공간의 모욕적 표현은 주로 청소년들의 충동적 행위이며,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기보다 게시물 삭제나 게시판 접근 금지조치 등이 바람직하다"는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또다른 경찰관은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서 이미 모욕죄가 폐지됐고 이는 세계적 추세"라며 "형사법적으로는 '비범죄화'하고 민사적 수단으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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