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태산(泰山)은 (비록 다른 나라의 흙이라도) 한 줌의 흙을 사양(辭讓)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황하(黃河)와 바다는 (여러 지역에서 흘러드는) 조그만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는 고로 깊은 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왕(君王)도 (나라가 다르다 해서) 백성들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군왕의 덕(德)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진(秦)나라가 천하를 병합해가는 과정에서, 점차 천하의 많은 인재들이 진나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진나라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염려한 수구세력이 외부로부터 모여드는 인재들의 충성심을 문제 삼아 이들을 모두 추방하자는 주장을 펴게 된다.
이때 이러한 배타적인 분위기에 직면하여 추방을 당하게 된 초(楚)나라 출신 이사가 ‘인재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간함’이란 제목의 ‘간축객서’라는 유명한 상소를 올려, 천하통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진나라만의 인재를 생각하는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야 함을 유려한 문장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시황제에게 발탁되어 천하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지금 지구상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는 G1, 즉 미국이다. 미국의 국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경제력에서 나온다. 이러한 최강국 미국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 바로 실리콘밸리와 월가이다. 그러면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능력만 있으면 받아들이는 그들의 개방된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강성한 국가로 손꼽히는 국가는 당(唐)나라이다. 당시 당나라는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라면 과거를 통해 선발한 뒤, 고급 관료로 채용하는 열린 인사정책을 폈다. 그 결과, 당시 신라 출신이었던 최치원(崔致遠)은 빈공과(賓貢科)란, 외국인 대상의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역순관(館驛巡官)이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다.
또한 신라 말엽의 장보고(張保皐)는 일찍이 당의 서주(徐州)로 건너가 뛰어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이란 벼슬을 하였다.
우리나라뿐인가? 일본의 경우도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呂)란 사람이 최치원과 마찬가지로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과거시험을 통해 장안(長安)에서 벼슬을 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즉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적을 초월하여 인재를 발탁하는, 열린 인사정책이 필요 조건임을 역사는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인재 채용정책은 어떠한가? 비근한 예로, 박근혜 정부 초기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벤처기업인인 김종훈씨라는 인물을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발탁한 예가 있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결국 국적문제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 부족 가능성 등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을 견디지 못하고 낙마하는 불행한 경우를 우리 모두는 목격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 곳곳에 배타적인 칸막이가 쳐져 있는 것을 우리 모두는 목격하고 살아간다. 직능별, 직업별로 거대한 칸막이가 쳐져서 각자 각자의 칸막이 안에서 소위 ‘렌트’ 또는 ‘지대’를 누리며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배타적인 자신들만의 이너 서클을 구축한 채 거의 평생토록 그 안에서 안주한다.
교수들은 어떠한가? 교수사회도 결코 공무원 사회에 못지않다. 언론계는 어떠한가? 아마도 앞서 얘기한 두 부류의 직업에 비해 더하면 더할 것이다. 다른 나라 국적의 인재 채용은 고사하고, 칸막이라도 걷어내는 인재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여의도 금융가의 경우, 한 직장에서만 오래 근무한 경력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닌 부끄러운 경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