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구제금융 정책 실패…시리자, 더 나은 개혁안 제시못해
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국제채권단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속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에 쏟아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과 유명 경제학자는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맞은 것은 실패한 긴축정책에 집착을 한 채권단과 개혁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시리자 정권의 정치적 무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1차 그리스 구제금융 이후 최근 5년간 채권단의 구제금융 정책은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키고 채무 상환 능력을 키우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스에 혹독한 긴축을 강요했지만 그 결과, 수요 감소로 경제 불황을 심화시키고 실제 채무 부담은 오히려 늘렸다는 것이다.
구제금융 체제의 실패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여과없이 드러났다. 유럽통계청(유로스타트)과 그리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 지출은 2010년부터 작년까지 29.2%나 급감했다. 정부 고용을 30% 가량 줄이는 등 초강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지출을 줄인 것이다. 그 결과 재정적자 규모는 급감했고, 국가채무도 2011년에서 작년까지 약 11.0% 줄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규모는 2011년 171.3%에서 작년 177.1%로 오히려 늘었다.
혹독한 불황에 따른 GDP의 마이너스(-) 성장 때문에 그리스 명목 GDP는 2010년부터 작년까지 24.6%나 급감했다. 이 기간에 실질 GDP 성장률은 2010년 -5.4%, 2011년 -8.9%, 2012년 -6.6% 등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작년에 겨우 0.8%로 소폭 반등하는데 성공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마틴 울프 수석경제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 국민의 지출이 실제로는 40% 이상 감소했다”고 추산하면서 그리스의 불황이 재앙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적 국제금융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도 지난달 28일 비영리 미디어인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채권단의 지출 삭감 및 증세 정책이 그리스의 불황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현실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구제금융에서 채무 경감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은 채권단의 치명적인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리스의 채무를 상환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방만하게 돈을 마구 빌려준 채권자도 디폴트의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경제 원칙에 따라 채무 경감이 필수였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FT는 지난달 18일자 사설에서 1차 구제금융이 채무 경감은 전혀없이 2000억 유로(약 250조원) 이상을 그리스 경제구제가 아닌 ‘채권자 구제’에 주로 투입했다며 비판했다.
FT는 “채권단이 채무 경감과 경제 회복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없이 그리스의 부조간 채무상환 자금만 융통해준 미봉책에 그친 결과 기존 구제금융은 향후 추가 구제금융의 ‘독이 든 씨앗’을 뿌렸다”고 요약했다.
또한 FT는 시리자가 그리스의 고질적인 정실주의·족벌체제 타파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이에 맞서려는 의지는 거의 보여주지 못했고 개혁에서 끝없이 뒷걸음질친다는 신호만 보냈다고 비판했다.
치프라스 정권이 부가세·연금 개혁에서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 그리스 경제의 걸림돌인 유착관계 해체 등의 더 나은 개혁 대안을 제시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채권단 제안이 채무 경감 누락 등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번을 마지막 구제금융으로 만들 수 있는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시리자 정권은 이를 거부했다고 FT는 지적했다.
게다가 협상 막판 단계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꺼내든 국민투표 카드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비난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국민투표 제안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책임 회피 시도”이자 “자국 위기의 비용을 최소화하기보다 자리 지키기에 더 관심이 있는 지도자의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리스 위기 정보사이트 ‘그릭크라이시스닷넷’ 운영자인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법대 교수는 FT 기고문에서 국민투표 결정이 시리자 지지층을 만족시키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기회주의적·근시안적 행동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