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현장] 월드컵 환희 속 잊힌 영웅들

입력 2015-06-0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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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이 우승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AP뉴시스)

6월. 녹색 그라운드가 축구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계절이다. 4년에 한 번, 전 세계 축구팬들은 둥근 공에 사로잡힌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지닌 마력이다.

역대 FIFA 월드컵은 대부분 6월과 7월 사이 열렸다. 그래서 6월은 전 세계 축구 역사가 새롭게 쓰인 계절이기도 하다. FIFA 월드컵은 85년이란 세월(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 동안 숱한 명장면을 연출하며 전 세계 축구팬들을 웃고 울렸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도 대부분 6월에 만들어졌다.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박창선(61)이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그림 같은 중거리 슛으로 대한민국 월드컵 첫 골을 터트렸고,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예선에서는 강호 스페인과 2-2 기적 같은 무승부를 기록한 짜릿한 기억도 있다. 4강 신화를 이룬 2002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진출을 달성한 순간도 6월의 기분 좋은 역사로 기록됐다.

6월의 뜨거운 명승부는 시린 가슴을 아물게 하는 힘도 지녔다. 사실 한국사에서 6월만큼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계절도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은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게 했고, 월드컵 열기로 활활 타올랐던 2002년 6월엔 제2연평해전으로 인해 6명의 젊은 청년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처럼 6월은 반세기 넘게 환희와 비극을 끌어안은 채 ‘슬픈 공존’을 이어왔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우리는 13년이란 세월 동안 세 차례의 월드컵(2006ㆍ2010ㆍ2014)을 더 경험했다. 월드컵의 계절 6월은 수많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전쟁 영웅들은 월드컵 열기 속에서 잊힌 영웅이 됐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청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몸을 던져 나라를 지켜낸 청년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외면하게 된다.

일부 스포츠 스타들의 불성실한 군 복무 태도는 전쟁 영웅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대변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27)은 기초군사훈련 기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돼 퇴소 조치됐고, 축구 스타 박주영(30)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소속이던 2012년 초 모나코 체류 자격을 통해 병역 면제에 준하는 혜택을 받았지만 자신의 편의를 위해 제도를 악용하는 꼼수를 부렸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배상문(29)은 입대를 거부하고 병무청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7일(한국시간) 캐나다에서는 또 다른 월드컵이 열린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이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 코스타리카, 스페인과 한조를 이뤄 경기한다. 한국은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을 무렵엔 연평해전 13주기를 맞는다. 13년 동안 우리는 세 번의 월드컵에 열광하면서 진정한 영웅은 외면했다.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한 게 엊그제 일이다. 하지만 영웅들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영원히 죽는다는 건 기억 속에서 잊히는 일이다. 어쩌면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진정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끔찍한 살상 무기도, 월드컵 열기도 아닌 우리 사회 무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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