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 전 가천대 객원교수
가뜩이나 국내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데 그들이 장기간 구금돼 있을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돼 거시적으로 봐 오히려 국민에게 해악이 될 것이란 설명이 정부 경제부처들로부터 나오곤 했다. 그러나 이런 명분도 한두 번이지 너무 자주 되풀이되다 보니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흐름에 따라 대기업 관련 인사들이 횡령·배임 등의 위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아예 실형을 살지 않는 것은 물론 사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직 추론 단계에 있긴 하지만 희대의 불법 로비스트 성완종씨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번씩이나 사면된 건 종전의 관행보다 한 술 더 뜬 것이어서 그 배경에 뇌물수수 등의 비리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와는 별도로 그의 사면 미스터리를 수사하도록 검찰에 지시한 걸 놓고 야당 측이 말하듯 물 타기 운운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다만 성완종 사면 수사와 기업인 사면이란 명제 자체를 뒤섞어, 가령 야당 측 공세의 예봉을 꺾으려 한다면 박 대통령이 옹색하기 짝이 없는 정치를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리란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렇듯 좋지 않은 정치공방 와중에 예컨대 가석방 요건을 갖춘 최태원 같은 기업인들의 ‘광복절 특사’ 꿈이 무산된다면 대통령이든 야당 측이든 3류 정치를 한다는 조소를 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문제들이 얽혀 있을 때엔 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정치인, 기업인, 혹은 제3의 직업인을 막론하고 법령과 원칙에 따라 사면이든 가석방이든 시행하면 될 터이다. 괜스레 정치가 춤을 춰 도리어 기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3류 국가에서 자주 일어난다. 한국이 3류 국가인가?
이야기의 전개가 좀 튀는 걸 독자 제위가 양해한다면, 재벌과 대기업의 공과를 새삼 되짚어 보기로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국경제 도약 공로를 간과할 수 없듯이 여기에 적극 협력한 대기업 집단의 은공도 역사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
대기업을 옹호하는 일부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에서 아유(阿諛)의 냄새가 간혹 풍기기도 한다. 이런 추세는 도리어 대기업 집단에 해독이 됨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공(過恭)이 비례(非禮)의 함정으로 떨어지는 걸 모르는 소치다. 기업인의 위법행위도 누구의 불법행위 못지않게 비판받아야 한다. 동시에 가석방이나 사면의 혜택에서 기업인이 배척돼야 할 까닭도 없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한국의 정치란 게 여야를 막론하고 진흙탕에 빠져 있다. 어느 쪽이든 고고(孤高)한 척할 계제가 못 된다. 기업인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