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맞은 허블우주망원경, 그 시작은 32세 천재 과학자로부터…

입력 2015-04-24 09:06수정 2015-04-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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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맞은 허블우주망원경, 그 시작은 32세 천재 과학자로부터…

▲'우주망원경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이먼 스피처(1914~1997).(위키백과 캡처)

1990년 4월25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역사적인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에 허블우주망원경을 올린 것이다. 지구에서 130억광년 떨어진 천체까지 관측할 수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은 그 후 25년간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허블우주망원경은, 지구 대기권 밖에서 가동되는 우주 망원경들 중 가장 크고 유명한 망원경이다.

25년간 우주를 유영한 허블우주망원경의 역사는 1946년 젊은 천문학자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당시 32세였던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의 라이먼 스피처 박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지구 대기가 미세한 요동을 만들어 우주의 빛이 온전히 지표면의 천체망원경에 유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주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망원경을 만들어야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수십년간 실행되지 못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1960~1970년대 미·소 우주경쟁 속에서 천체망원경 예산을 모으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사이 스피처는 관련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우주망원경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듬해인 33살엔 프린스턴 대학연구팀의 총 책임자로 발탁됐다. 이후 약 32년간 이곳에 몸담으며 현대 물리학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스피처의 연구는 플라스마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간물질에 집중됐다. 많은 저서를 남겼다.

32살의 스피처가 내 놓은 제안은 그가 69세가 돼서야 결실을 맺었다. 1983년 미 정부의 지원 하에 허블우주망원경 발사계획이 수립됐고 2년 뒤 제작을 마쳤다. 그리고 1990년 4월25일 지구 궤도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됐다.

스피처는 1997년 3월31일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사망했다.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묘지에 묻혔다. 스피처는 사망한 후에도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아직도 많은 물리학자들은 그를 '우주망원경'의 아버지로 부르며 기억하고 있다. 그가 집필한 'Diffuse Matter in Space(1968)'과 'Physical Processes in the Interstellar Medium(1978)'는 수십년 동안 물리학의 교본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NASA는 25년간 인류에게 우주의 신비를 알렸던 허블우주망원경을 기리는 성대한 축하잔치를 계획하고 있다. 20일부터 26일까지는 '허블 기념주간'이고, 26일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허블이 보내온 이미지들을 공개한다. 미국 도시 곳곳에서 허블우주망원경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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